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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김돈희 / 金敦熙 [예술·체육/서예]
항일기의 서예가(1871-1937). 자는 공숙(公叔). 호는 성당(惺堂). 서화협회(書畵協會)를 창립했던 일원으로 제4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안진경·황정견 풍의 해서에 뛰어났고 서예에 관련된 이론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김동리 / 金東里 [문학/현대문학]
1913년∼1995년. 일제 강점기 소설가·시인. 자는 시종(始鐘)이고, 호는 동리(東里)인데 호를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다른 이름으로 김창봉(金昌鳳)·김창귀(金昌貴)·김태창(金泰昌)이 있다.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경주(慶州)이다. 부친 김임수(
김동삼 / 金東三 [역사/근대사]
1878-193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일송(一松). 1913년 여준·이상룡 등과 함께 부민단을 조직했으며, 1918년 지린성 왕칭현에서 서일·여준·유동열·김좌진 등 39명이 민족대표로 서명한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1927년 김좌진·이청천 등과 함께
김동수 / 金東洙 [역사/근대사]
1916-1982.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광복군 제5지대 간부로 산시성 타이항산에서 적 후방공작을 전개하였다. 충칭에서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장에 취임하여 활동하였다. 사단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국민장이 수여되었다.
김동식 / 金東植 [역사/근대사]
1883-1945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중화 출신. 천도교인으로 1919년 상원(祥原) 지방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1일 천도교 중화교구의 전도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만세운동계획을 세웠다. 3월 2일에 상원교구 앞에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한 수백명
김동신 / 金東臣 [역사/근대사]
1871-1933. 의병장. 자는 원표(元表), 호는 청암(淸菴). 충청남도 회덕 출신. 고종 때 무과에 올라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승(秘書丞)을 제수받았다. 1905년 10월 22일 사직소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1906년 봄 최익현(崔益鉉)과 민종식(
김동엽 / 金東燁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 창단감독, 서울방송 전속야구해설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황해도 봉산 출생. 아버지는 선경(善慶)이고, 어머니는 정국화(鄭國華)이며,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황해도 사리원(沙里院) 송화인민학교, 송화고등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6
김동우 / 金東寓 [역사/근대사]
1896-198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일선(金一鮮)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창선면(昌善面)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 독립선언식에 참가하여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
김동원 / 金東元 [역사/근대사]
1882-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대동 출신. 1903년에 평양일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906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1년 후 신병으로 중퇴, 귀국하였다. 1910년부터 6년 동안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대성학교(大
김동은 / 金東垠 [역사/근대사]
1908-1978.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보성 출신. 1929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 5학년 재학중 김종섭(金鍾燮)·박기원(朴基源)·장재성(張載性) 등과 무등산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회합을 갖고 광주고보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1926년 이후 학생비밀결사로서 항
김동인 / 金東仁 [문학]
1900-1951. 소설가. 평남 평양 사람.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와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 출판법 위반혐의로 4개월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신경향파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를 주장했다. 1924년
김동진 / 金東鎭 [종교·철학/유학]
1866년(고종3년)~1952. 저자는 19세기 구한말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저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소수서원 원장을 3번이나 역임하고, 후진의 양성을 위해 도강서당을 세웠다는 기록 정도만 남아 있다. 저자는 김흥락의 말년 제자이다. 1
김동철 / 金東轍 [예술·체육/체육]
1893-미상. 체육인. 경상남도 마산 출생. 마산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 기자로서 조선체육회 발기인회에 참가하였으며 조선체육회 창립준비위원으로 선정되어 조선체육회 창립을 위하여 활약하였고, 그해 조선체육회가 창설되자 상무
김동필 / 金東弼 [역사/근대사]
1860-1944. 항일기의 애국지사. 1905년부터 일제침략을 규탄하는 상소운동을 벌였으며, 을사조약 체결 후에는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자신회’를 조직하고, 1924년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위원, 1930년 2월 신간회 집행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2년
김동하 / 金東河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제1상륙 사단장, 해병중장, 국가재건최고회의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군인. 체육인. 함경북도 무산(茂山) 출신. 일본강점기에 유년기와 청년기를 만주에서 보냈고 1941년에는 만주 신경(新京)에 위치한 4년제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여 소위로 임관하였다.광복과 함께
김동한 / 金東漢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사교무용학원인 조선예술학원을 설립한 무용가. 러시아 해삼위(海蔘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했다. 1921년 해삼위학생음악단이 고국 방문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동년(同年) 김동한은 해삼위동포연예단을 이끌고 고국을 방문해 우리나라
김동헌 / 金東獻 [종교·철학/유학]
1791년(정조 15)∼1869년(고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증조부는 김치후, 조부는 김종정, 부친은 김명연이다. 모친은 남홍억의 딸이다. 처부는 이희곤의 딸이다. 1832년에 세자익위사부수를 거쳐 오위사과·사복시주부·충훈부도사 등을 지냈으며, 외직으로 임실현감
김동협 / 金東鋏 [역사/근대사]
192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선소면(仙沼面)이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강제 징용과 각종 수탈을 만행하자, 일본의 강압적 행위에 대한 분노로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1943년 조종희(趙
김두만 / 金斗萬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4월 2일 수진면 고향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뒤 동지들과 같이 만주로 망명하여,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인 임시의사회(臨時議事會)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관전현(寬甸縣)을 근거지로 하
김두명 / 金斗明 [종교·철학/유학]
1644(인조 22)∼1706(숙종 32). 조선 후기의 문신. 김추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흥진,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준, 어머니는 소동헌의 딸이다.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말과 행동이 신중하고 침착하여 칭찬을 받았다. 167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