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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부원동유적 / 金海府院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김해시 부원동에 있는 삼한시대(원삼국시대)의 조개더미(패총) 및 집터 유적. 김해 봉황동패총의 동쪽 약 1㎞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1980년 4월 10일부터 약 4개월에 걸쳐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남산 서쪽 기슭의 패총지역(A지구)
김해분산성 / 金海盆山城 [예술·체육/건축]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에 축조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용된 석축 성곽.산성. 사적. 김해 동북쪽에 위치한 해발 330m의 분산(盆山) 정상부를 감싼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남쪽으로는 김해평야, 서쪽으로는 김해 시가지와 양동산성(良洞山城), 그 뒤로는 창원 쪽이 한
김해수가리패총 / 金海水佳里貝塚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3동 수가동 가동마을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조개더미. 유적은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4곳(1·2·3·4구), 철기시대 조개더미 1곳(5구) 등 모두 5군데가 있으나 대부분 파괴되었고, 3구와 5구 조개더미만 상태가 양호하였다. 1978년과 19
김해시 / 金海市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동남부에 위치한 시. 동쪽은 양산시와 부산광역시, 서쪽은 창원시, 남쪽은 남해, 북쪽은 밀양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44′∼129°01′, 북위 34°52∼35°23′에 위치한다. 면적은 463.36㎢이고, 인구는 53만 6707명(2019년 현재)이다
김해양동고분군 / 金海良洞古墳群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산3번지 가곡마을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걸친 무덤 유적. 1969년 마을 뒷산에서 토기 일부가 노출되어 발견되었다. 이 유적의 상세한 구조는 불명확하나, 발견자의 말에 따르면 장축 2m 정도의 널무덤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김해은하사대웅전 / 金海銀河寺大雄殿 [예술·체육/건축]
경상남도 김해시 은하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불전. 시도유형문화재.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되어 있다. 당초에는 서림사(西林寺)가 있었으나 가락국 수로왕(首露王) 때 모두 소실되어 그 뒤에 재건되었다고
김해죽도성 / 金海竹島城 [예술·체육/건축]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조선후기 왜장 나베시마 부자가 축조한 성곽.산성. 사적. 둘레 약 1,200m. 현재는 100m 정도의 성벽만 남아 있으며, 수호(水壕)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다. 가락산(駕洛山)에 있어 일명 가락성(駕洛城)이라고도 한다.이 성은 1593년(선조
김해죽림리패총 / 金海竹林里貝塚 [역사/선사시대사]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옛 지명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죽림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 현재 조개더미 주변에는 지표에 조개껍질이 흩어져 있으며, 대부분 택지 및 경작지화되어 있다. 조개껍질의 분포범위가 10×5m 정도밖에 안 되며, 조개껍질퇴적층의 두께도 30
김해지내동옹관묘 / 金海池內洞甕棺墓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독무덤. 독널로 사용된 토기는 황갈색 민무늬토기와 회청색 연질토기였는데, 이 두 토기는 서로 아가리를 맞대어서 이음독무덤을 만들고 있었다. 이 독무덤 곁에는 붉은간토기가 놓여 있었는데, 일본 구주지방(九州地方)의 야요이식토기
김해평야 / 金海平野 [지리/자연지리]
경상남도 김해시의 낙동강 삼각주(三角洲)에 발달된 퇴적평야. 김해평야는 낙동강 삼각주상에 형성된 평야이다. 낙동강 삼각주는 구포 부근까지 들어왔던 만(灣)이 낙동강의 토사로 메워져 형성된 지형이다. 낙동강은 토사유출량이 많고, 하구의 대조차(大潮差)가 1m에 불과하다.
김해하자마농장소작쟁의 / 金海迫間農場小作爭議 [역사/근대사]
1931년 10월부터 1932년 2월까지 경상남도 김해에 있던 일본인 지주 하자마(迫間房太郎)의 농장에서 한국인 소작농민들이 전개한 소작농민항쟁. 하자마농장은, 소작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중간관리인인 간사(幹事)들에게 소작인들로부터 거둬들인 소작료 1석당 13-15전의
김해향교 / 金海鄕校 [교육/교육]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에 있는 향교. 1408년(태종 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 부사 정기남(鄭奇男)이 김해읍 동쪽 다전동에 중건하였다. 1683년(숙종 9) 향교 뒷
김혁 / 金爀 [역사/근대사]
1875∼1936. 독립운동가. 1897년 4월에 무관학교 졸업, 육군보병참위로 임관, 육군참령에 승진되었다. 1921년 1월 서일·홍범도·지청천·김좌진 등과 합세하여 만주의 10개 독립군단체가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 1927년 2월 항전하다 붙잡혀 이듬해 3
김현감호설화 [문학/구비문학]
신라시대의 호랑이 설화. 신라 때 처녀로 변신한 호랑이가 김현(金現)과 부부 인연을 맺은 뒤 그를 위해 죽음을 택했다는 설화. 『삼국유사』 권5 효선편(孝善篇) 김현감호조에 수록되어 있다. 두 편의 설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김현설화’이고, 다른 하나는 ‘신도징
김현기임명문서 / 金顯岐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6월 6일. 김현기(金顯岐)를 경기전 참봉 판임관 5등에 서임하는 임명장.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하는 전각이다. 판임관은 조선후기 각부의 대신이 임명하던 하위관직이다. 문서에는 발급자가 궁내부대신 이재극(李載克)임을 밝혔다.
김현성필적 / 金玄成筆蹟 [예술·체육/서예]
조선시대 문신이자 서화가인 김현성이 이증(李增)의 절구와 율시 9편을 행서로 필사한 서첩. 보물 제1626호. 필사본, 첩장, 1첩. 39.9×37.0㎝ 이 서첩에는 「취정원수좌하(醉呈元帥座下)」, 「영보정(永保亭)」, 「덕산현(德山縣)」, 「신창산정(新昌山亭)」, 「
김현승시초 / 金顯承詩抄 [문학/현대문학]
김현승(金顯承)의 시집. 작자의 첫 시집으로 1957년 문학사상사(文學思想社)에서 간행되었다. 총 27편의 시가 1부와 2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시집의 맨 뒤에는 서정주(徐廷柱)의 발문(跋文)이 붙어 있다. 시인의 자서(自序)에 의하면, 1934년 출발기에서 침묵
김현준 / 金賢準 [사회/사회구조]
해방 이후 『사회학개론』 등을 저술한 학자. 전라남도 영암 출생. 도쿄 유학시절 1919년의 2·8독립선언에 즈음하여 김도연(金度演)·김안식(金安植)·최원순(崔元淳)·정광호(鄭光好) 등과 회합하여 독립운동을 일으켜야 할 때임을 재일유학생사회에 주창하였다. 이윽고 거사자
김형규 / 金亨奎 [언어/언어/문자]
1911∼1996. 국어학자. 1926년에 원산제일보통학교(元山第一普通學校)를, 1931년에 원산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36년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법문학부(法文學部) 조선어문학과(朝鮮語及文學科)를 졸업하였다. 이 해에 전주사범학교(全州師範學校) 교유(敎諭)에 취
김형렬 / 金亨烈 [종교·철학/신종교]
1862년(철종 13)∼1932년. 미륵불교의 창시자. 1894년(고종 31) 10월 강증산을 처음으로 만났다. 1915년 모악산 금강대에서 백일기도 후 신안이 열려 영서를 받았다고 하면서 교파를 형성하였다. 1918년 금산사 안에 미륵불교라는 교파를 세웠다. 1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