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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임수명 / 林守明 [역사/근대사]
1897-197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임경(林鏡)·임작주(林作柱)이다. 본적은 전라북도 정읍(井邑)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전라남도 여수(麗水)이다. 조부는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崔益鉉)의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임병찬(林炳瓚)이고, 부친
임승복 / 林勝福 [예술·체육/연극]
1912-미상. 일제 강점기 극작가. 필명은 임선규(林仙圭)이고, 개명한 이름은 임중랑(林中郞)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관동리(官洞里)이다. 부인은 여배우 문예봉(文藝峰)이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공립강경상업학교 3학년을 수료한 뒤, 1931
임시제실유급국유재산조사국 / 臨時帝室有及國有財産調査局 [역사/근대사]
구한말 제실재산(帝室財産)과 국유재산을 분할, 조사할 목적으로 임시로 설치된 관청. 내각총리대신이 감독하여 제실유재산 및 국유재산을 조사하고, 그 소속을 판정하며 정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1907년부터 시작한 사업이 궁내부 관리의 재산을 제실재산과 국유재산으로
임야조사사업 / 林野調査事業 [역사/근대사]
1908년에는 '삼림법'을 제정, 공포하여 국유·민유의 구분에 의하여 대부분의 임야를 국유림화 한 사업. 1911년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창출된 국유림을 보다 효과적으로 정리, 경영하기 위한 조처로서 '삼림령'을 발포하였다. '조선임야조사사업보고'의 실질적인 목적은
임예환 / 林禮煥 [역사/근대사]
1865-194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연암(淵菴).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고, 1919년 3월 1일 손병희·오세창 등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한 뒤 검거되었다. 출옥 후에도 계속 항일운동을 하였다.
임오교변 / 壬午敎變 [역사/근대사]
만주에서 일본경찰이 대종교 간부를 박해한 사건. 1942년 11월 19일 만주 영안현 동경성에서 일본경찰이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하여 사건을 날조, 교주 이하 간부 모두를 검거하여 박해를 가한 사건으로 이를 대종교에서는 임오교변이라 한다.
임오군란 / 壬午軍亂 [정치·법제/정치]
1882년 6월 9일 훈국병(訓局兵)들의 군료분쟁(軍料紛爭)에서 발단해 고종 친정 이후 실각한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된 정변. 군민의 불평은 대원군과 연결되어 민씨 및 일본 세력의 배척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군민은 대원군의 밀명에 따라 영돈령부사 이최응 등을 살해하고,
임오군란기 / 壬午軍亂記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실기소설. 1930년에 덕흥서림(德興書林)에서 간행한 바 있다. 「임오군란기」는 임오군란의 전말을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실기체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임오군란의 시말을 흥미 본위로 기술한 것이다. 말미에서 “임오군란이 대원군의 진무(鎭撫)
임오동조탄일진표리치사전문홀기 / 壬午東朝誕日進表裏致詞箋文笏記 [정치·법제]
익종(翼宗)의 비이자 헌종(憲宗)의 어머니인 신정왕후의 생일을 맞이하여 치사를 올리고 전문과 표리를 올리는 의식 과정을 기록한 홀기. 1882년(고종 19) 11월 13일부터 12월 초6일까지 준비하는 과정을 일기식으로 기록하였는데, 문서명은 홀기이지만 사실상 의주(儀
임용련 / 任用璉 [예술·체육/영화]
1901-미상. 양화가. 일명 임파(任波).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중국으로 탈출, 한때 난징(南京)의 금릉대학(金陵大學)에 다녔다. 1922년 중국인을 가장한 ‘임파’라는 이름의 중국여권으로 미국에 건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