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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군지 / 金堤郡誌 [지리/인문지리]
1918년 조찬성이 전라북도 김제군(현 김제시)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지방지. 1책. 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이밖에도 조선 정조 연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김제군읍지(金堤郡邑誌)』가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갑신구지서(甲申
김제남 / 金悌男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13(광해군 5).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안도, 아버지는 증 영의정 오, 어머니는 권상의 딸이다. 선조의 장인이다. 1594년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거쳐, 1596년 연천현감을 지냈다. 159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01
김제내아 / 金堤內衙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후기 관리의 가족이 살림을 하던 관청.시도유형문화재.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61호. 내아는 동헌(東軒)의 외아(外衙)가 공무를 수행하는 곳인데 대하여, 관리의 가족이 살림을 하는 곳을 가리킨다. 1667년(현종 8)에 외아와 함께 지어진 것으로
김제동헌 / 金堤東軒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후기 지방 수령이 공무를 보던 관청.시도유형문화재. 정면 7칸, 측면 4칸의 익공계(翼工系)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동헌은 일반적으로 공무를 수행하는 외아(外衙)와 관리의 가족이 생활하는 내아(內衙)로 나누어지는데
김제시 / 金堤市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한 시. 동쪽은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은 동진강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만경강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40′∼127°05′, 북위 35°39′∼35°55′에
김제신 / 金悌臣 [종교·철학/유학]
1438(세종 20)∼1499(연산군 5).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관찰사 자지, 아버지는 내자시윤 해, 어머니는 동지총제 성개의 딸이다. 1462년(세조 8)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해 승문원권지정자, 집의, 좌승지, 예조참판, 병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
김제월전리산성 / 金堤月田里山城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산성. 시도기념물. 전라북도 기념물 제85호. 금구면에서 동쪽으로 2km쯤 떨어진 해발 250m 정도 되는 봉두산(鳳頭山)의 정상부를 에워싸고 있으며, 이 봉두산이 옛 금구현(金溝縣)의 진산이다.남쪽으로는 벼락바위라는
김제전교비 / 金堤傳敎碑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신흥마을에 있는 조선후기 제19대 숙종의 교지를 기록한 비.교비. 시도유형문화재. 높이 170cm, 너비 55cm, 두께 25cm.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5호. 조선숙종의 교지를 기록한 비로 1680년(숙종 6) 10월에 건립되었다.당시 이 곳
김제평야 / 金堤平野 [지리/자연지리]
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정읍시·부안군·완주군 일부 지역을 포함한 지역에 펼쳐진 평야. 동진강(東津江)과 만경강(萬頃江) 유역에 발달된 충적평야와 그 주변의 넓은 야산지대를 중심으로 한 침식평야로 구성되어있다. 이른바 ‘김만경평야(金萬頃平野)’ 혹은 ‘김제만경평야’로
김제향교 / 金堤鄕校 [교육/교육]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향교. 1404년(태종 4)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5년(인조 13)에 중건하였으며, 그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
김제향교대성전 / 金堤鄕校大成殿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교육시설. 시도유형문화재.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호. 1635년(인조 13)에 현재의 규모로 재건된 후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고, 1986년 명륜당과 함께 대성전을 수리
김조순 / 金祖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5∼1832). 딸이 순조의 비로 봉해지자 영돈령부사로 영안부원군에 봉해지고, 이어 훈련대장·호위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시책문·옥책문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풍고집》이 있다. 양주 석실서원, 여주 현암서원에 제향되었다.
김종걸 / 金宗傑 [종교·철학/유학]
1628년(인조 6)∼1708년(숙종 34). 조선 후기 유학자·효자. 조부는 김흠, 부친 통덕랑 김해윤과 모친 금성현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사서를 읽었으며, 부친이 자리에 눕자 소태산에 제단을 쌓고 7일 낮밤을 금식하며 기도를 올려 꿈속에서 신령이 가르쳐
김종구 / 金鍾九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 지배 당시 금산면의 서기로 근무하였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 22일 상옥리의 김용술, 임승환 등은 각 지방에서 일어나는 3·1독립운동과 호응하여 금산군에서도 일대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에 합의, 금산
김종덕 / 金宗德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24∼1797). 1753년(영조 29)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저서로는《천사집》·《성학입문》·《예문일통》·《예서》 등이 있다.
김종렬 / 金鍾烈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대한체육회 부회장,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강원도 원주 출생. 1937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영문학부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1942년 귀국하여 순천공립중학교 교사, 1948년 서울대
김종무시장 / 金宗武諡狀 [정치·법제]
조선 중기의 문신 김종무(金宗武)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892년(고종 29) 8월 장석용(張錫龍)이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은 그의 후손 김세동의 요청에 의해 공조판서 장석용이 지었다. 시장의 말미에는 예조의 당상관이 서압하고 낭청이 착함하였으며,
김종서 / 金宗瑞 [종교·철학/유학]
1383(우왕 9)∼1453(단종 1).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지평 태영, 아버지는 도총제 추, 어머니는 대사헌 배규의 딸이다. 1405년(태종 5) 식년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해 1415년 상서원직장을 지냈다. 우정언, 이조정랑, 함길도도관찰사, 우의정을 역
김종수 / 金鍾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권신(1728∼1799). 할아버지는 참판 희로, 아버지는 치만, 어머니는 홍석보의 딸이다. 부인은 윤득경의 딸이다. 영조가 죽자 행장찬집당상이 되었고, 승지·경기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를 거치고, 규장각이 정비되면서 제학에 임명되었다. 사도세자를 위한 토
김종수 연풍현감 해유문서 / 金宗壽 延豊縣監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종수 연풍현감 해유문서. 1809년(순조 9) 9월 일에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9월 17일에 수공충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를 이관, 1810년(순조 10) 1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 동년 1월 초10일 이조에서 김종수에게 조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