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지명 > 고지명 총 60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지명 > 고지명
선곡 / 善谷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매곡현(買谷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선곡으로 고쳐 내령군(奈靈郡)에 귀속시켰다. 고려 태조 때성주(城主)가 귀순하였으므로 예안(禮安)으로 이름을 바꾸어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고려 현종 때길주(吉州)에 붙였으며 우왕
선사포 / 宣沙浦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철산군 백량면 기봉동에 있었던 포구(浦口). 철산군의 남쪽 해안가에 위치하였으며 진영(鎭營)이 설치되어 있던 곳이다.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겸 감목관(監牧官)이 1인 배치되어 있었으며 군사는 모두 865인이 있었다. 병선(兵船)의 분포를 살펴보면, 대맹선
선산 / 善山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있었던 지명. 본래 신라의 일선군(一善郡)이었는데, 614년(진평왕 36)에 사벌(沙伐)과 감문(甘文)에 있던 상주(上州)의 주치소(州治所)가 이곳으로 이동해 오면서 일선주(一善州)로 개편되었다. (중략)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에 소지역주의가
선위 / 宣威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정평 지역의 옛 지명. 정평은 본래 동옥저(東沃沮)의 옛 땅이었다. 파지는 여진이나 말갈계통의 지명이고 선위는 한자식 지명이므로 고구려 때의 지명으로 본다. 고구려가 망한 뒤 300여 년이 지난 984년(성종 3) 비로소 이곳에 천정만호부(千丁萬戶府)를 두어
선춘령 / 先春嶺 [지리/인문지리]
고려 예종 때 윤관(尹瓘) 등이 동북여진(東北女眞)을 축출하고 새로 개척한 지역의 동북쪽 경계에 있었던 영(嶺). 공험진(公嶮鎭) 관할 구역 내에 있었다. 조선 초기 세종 때까지도 함길도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의 동북쪽 700리에 위치해 경계를 이루었다. 선춘현(先春峴)
설림 / 舌林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서천(舒川) 지역의 옛 지명. 757년(경덕왕 16) 서림군(西林郡)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가림현(嘉林縣)에 이속시켰다가 1314년(충숙왕 1) 지서주사(知西州事)로 승격시켰다. 1413년(태종 13) 지금의 이름인 서천군(舒川郡)이 되었고, 19
설부루성 / 屑夫婁城 [지리/인문지리]
만주의 요하(遼河) 주변에 있었다고 추측되는 고구려 때의 성. 『삼국사기』에는 압록수(鴨淥水) 이북의 항복한 11개성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본래는 초리파리홀(肖利巴利忽)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위치를 고증하기는 어렵다. 설부루성이 요하 주변에 있었으리라고 추측하는
성대호 / 省大號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태안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성대호현(省大號縣, 또는 省大兮縣)이었는데, 신라의 영토가 된 뒤 경덕왕 때 소태(蘇泰, 또는 蘇州)로 고쳐 부성군(富城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조선시대에 태안읍의 진산(鎭山)인 백화산(白華山)에 옛 산성(山城)이 있었던 점
성산가야 / 星山加耶 [지리/인문지리]
가야연맹체의 한 나라.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 성산가야를 벽진가야라고 했는데, 이는 성주군 벽진면의 지명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성산이라는 지명은 현재 고령군의 한 면으로서 성산면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지리적 위치
소가야 / 小加耶 [지리/인문지리]
가야연맹체의 한 나라. 지금의 경상남도 고성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삼국유사》 5가야조에 “소가야는 지금(고려 초)의 고성(固城)”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성군은 본래 고자군(古自郡)”이라고 되어 있으며, 《삼국지 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