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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민선무공신교서 / 金時敏宣武功臣敎書 [언론·출판/출판]
1604년 무신 김시민을 선무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18명에게 선무공신을 책봉하였는데,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晋州大捷)에서 큰 공을 세워 선무2등공신에 책봉된 김시민에게 내린 교서이다. 2006년 12월 29일
김시백 / 金時伯 [역사/근대사]
1887-1950. 항일기의 의병장.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영월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1908년 소모장으로서 강원도·경상북도·충청북도 일대에서 의병모집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결국 영주에서 붙잡혀 징역 10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다. 건국포장
김시보 / 金時保 [종교·철학/유학]
1658년(효종 9)~1734년(영조 10).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광현, 조부는 김수인, 부친은 김성우이다. 외조는 윤형성, 형으로 헌간공 김시걸이 있다. 1684년(숙종 10) 식년시 진사 1등에 3위로 합격하였다. 관직은 선공부정을 지냈다. 손자로 김이곤이
김시빈 / 金始鑌 [종교·철학/유학]
1684(숙종 10)∼1729(영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통덕랑 김정휘, 어머니는 이상언의 딸이다. 1702년(숙종 28)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필선을 거쳐 1724년(영조 즉위년) 장령이 되어 영조의 탕평책을 두둔하다
김시성 / 金是聲 [종교·철학/유학]
1602(선조 35)∼1676(숙종 2). 조선 중기의 무신. 증조부는 김영, 아버지는 김사행이다. 1637년(인조 15)에 무과에 급제, 1644년 익찬이 되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시종하여 심양에 다녀왔다. 1648년 충청수사가 된 뒤 강계부사·함경남북병사·어영중군
김시숙 / 金時淑 [역사/근대사]
1880-193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여성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 출신이다.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한 후, 숙부 김문주(金汶柱)의 권유로 40세의 늦은 나이에 글을 배워, 개화여성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여수원(
김시습 / 金時習 [종교·철학/유학]
1435(세종 17)∼1493(성종 24). 조선 초기의 학자·문인.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여 중이 되었다. 1463년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사업을 도왔고, 우리나라 최초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다. 유불교체기에 태어나 유교와
김시습 초상 / 金時習 肖像 [예술·체육/회화]
조선시대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의 초상. 보물 제1497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72㎝, 가로 48.5㎝.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무량사(無量寺)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金時習)을 그린 영정이다.
김시습전 / 金時習傳 [문학/한문학]
1582년이이(李珥)가 지은 전(傳). 김시습에 대하여 지은 전이다. 『율곡집(栗谷集)』 권14∼16 잡저에 실려 있는 작자의 유일한 전이다. 김시습의 선세가계(先世家系)에서 시작하여, 어린 시절 학문을 처음 익히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와 단종의 손양(遜讓)과 세조의
김시양 / 金時讓 [종교·철학/유학]
1581(선조 14)∼1643(인조 21). 조선 중기의 문신. 김언묵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석, 아버지는 비안현감 김인갑, 어머니는 남양 홍씨로 서윤 홍이곤의 딸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전라도도사, 예조정랑, 도원수, 판중추부사를
김시연 / 金始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0∼?). 대사헌 김노의 아들, 궁내부특진관 김완수의 아버지이다. 전라도관찰사 때 국고 탐장의 죄로 탄핵 받아 자자형을 받고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고종의 특지로 풀려나 1875년 형조판서에 올랐으나 강화도조약으로 혼란스런 틈을 타 조정 비방
김시온 / 金是榲 [종교·철학/유학]
1598(선조 31)∼1669(현종 10). 조선 중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찰방 김수일, 아버지는 진사 김철, 어머니는 찰방 김종무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사성 김극일에게 입양되었다.어려서부터 재행이 경상좌도에 이름났으나, 일찍부터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병자호란 이후
김시용 / 金時容 [역사/근대사]
1906-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제주도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早稻田] 대학에 입학하였다. 1928년 재학 중 항일학생단체인 재일조선청년동맹(在日朝鮮靑年同盟)에 가입하였다. 1929년 재일조선청년동맹에서 발행한 《조선청년(朝鮮靑年)》에
김시은 / 金時殷 [역사/근대사]
1887-1957.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농산(聾山)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출신이다. 1919년 제주도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한 14명 중 한 사람이다. 서울에서 3·1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귀향한 조카 김장환(金章煥)
김시점 / 金時漸 [역사/근대사]
1882-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정주(定州) 곽산(郭山)이다.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1913년 3월 20일 무죄로 출옥한 후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1919년 만주 안동현(安東縣)에서 김승만(金承萬)·오
김시진 / 金始振 [종교·철학/유학]
1618(광해군 10)∼1667(현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좌의정 명원 증손, 할아버지는 수인, 아버지는 남헌, 어머니는 사인 권흔의 딸이다. 1644년(인조 2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검열이 되었다. 문학, 수찬, 부교리, 전라도관찰사, 호조참판
김시창 / 金始昌 [종교·철학/유학]
1472(성종 3)∼1558(명종 13). 조선 중기의 효자. 할아버지는 사직 효신, 아버지는 의, 어머니는 조승중의 딸이다. 일찍이 김종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고, 금산에 거주하면서『가례』에 의한 상례를 철저히 준행하는 한편, 효행이 뛰어나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
김시태 / 金時泰 [종교·철학/유학]
1682년(숙종 8)~1722년(경종 2). 조선 후기 무신. 김상준 후손, 부친 김성구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김시정‧김시승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1721년(경종 1) 당시 황해병사로 재직 중, 사헌부에서는 김시태가 권
김시혁 / 金始㷜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76∼1750). 김선여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득원, 아버지는 제용감봉사 김홍주, 어머니는 주서 남궁배의 딸이다. 1708년(숙종 34) 식년 병과 급제 후, 경종 대에 수원부사로 물러났다가 영조 때 정미환국 후 복직되어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김시형 / 金時馨 [역사/근대사]
1894-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배천(白川)이고, 본적은 평안북도 용천(龍川)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11월 임시 정부 연통제 평안북도 독판부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광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