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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이봉환시장 / 李鳳煥諡狀 [정치·법제]
조선 후기의 문신 이봉환(李鳳煥)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910년(융희 4) 5월 시종원경 윤덕영이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봉환은 왕실의 종친으로 대한제국기에 정2품 자헌대부 규장각제학에 추증됨과 동시에 시호의 추증도 논의되어 1910년 6월에 '충정(忠
이산구곡가 / 駬山九曲歌 [문학/고전시가]
1926년에 이도복(李道復)이 이산정사(駬山精舍)를 낙성한 후 마이산(馬耳山)을 둘러싼 구곡 팔경의 승경을 노래한 강호가사. 단연 형식의 가사를 서곡 1수와 본곡 9수 등 총 10수로 구성한 연장체 가사. 대부분 4음보격이지만 가끔 6음보의 변격도 보임. 1926년 후
이상 / 李箱 [문학/현대문학]
항일기의 시인·소설가(1910-1937). 1933년 각혈로 기사의 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 온천에 요양 갔다가 돌아온 뒤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차려 경영했다. 이 무렵 이곳에 이태준·박태원·김기림·윤태영·조용만 등이 출입하여 이상의 문단 교우가 시작됐다. 작품
이상설 / 李相卨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독립운동가(1870∼1917). 고종의 밀지를 받아 이준·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참석하려 하였으나 일본에 의해 거부당했다. 1914년 이동휘·이동녕·정재관 등과 중국과 러시아령 안에서 동지들을 규합해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워 정통령에 선임
이상재 / 李商在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정치가·민권운동가·청년운동가(1850-1927). 서재필과 독립협회를 조직, 부회장으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개혁당 사건으로 복역했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파견을 준비했다. 소년연합척후대 초대 총재, 조선일보사 사장 등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
이상정증시문서 / 李象靖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증이조판서 이상정(李象靖)에게 '문경(文敬)'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도덕박문왈문 숙야경계왈경'이라 적어 문경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이상준 / 李尙俊 [예술·체육/현대음악]
1884-1948년. 음악가·양악의 선구자. 황해도 재령 출생. 12세에 상경하여 정동에 있는 피어슨성경학교에 입학하고 신교육을 받는 한편 손풍금을 배웠다. 15세에 다시 평양으로 내려가 안창호(安昌浩)가 설립한 대성학교(大成學校)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몇 년 후 다시
이상화 / 李相和 [문학]
항일기의 시인(1901∼1943).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시인이다. 1919년 서울 중앙고보를 수료하고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시위운동을 지휘했다. 1922년 문예지 《백조》 동인으로,〈말세의 희탄〉 등을 발표했다.《개벽》을 중심으로 시·소설·평론
이석예 / 李石藝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조선무용예술협회 현대무용부 위원으로 활동한 무용가. 고향과 출생년이 분명치 않다.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 중 일인이다. 최승희의 세계일주 공연 후 1941년 문하에 들어간 듯하다. 1942년 12월 6일부터 22일까지 동경 제국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독무공연’의
이선길 / 李鮮吉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제3, 7, 8회 전일본유도선수권대회 장년부에서 우승한 체육인. 1928년 일본 고도관(講道館)에 입관하여 유도를 수업하고 일본에서 명성을 떨친 우리나라 유도계의 선구자이다. 1932년 제3회 전일본유도선수권대회 일반 장년부에서 우승하고, 1938·193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