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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지명 > 고지명
  • 생초진 / 生草津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백제 때의 나루터[津]. 생초의 지명은 『삼국사기』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미상지분(未詳地分)으로 나온다. 632년(무왕 33) 여름 왕이 생초원(生草原)에서 사냥을 하였다는 기록과 659년(의자왕 19) 8월 생초진에

  • 서곡 / 瑞谷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안변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 때의 경곡현(𢈴谷縣, 또는 首乙呑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서곡으로 이름을 바꾸어 삭정군(朔庭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때 지명을 크게 바꾸고 정비할 무렵에도 그대로 서곡이라 하였으며, 조선시대도 같은 이름으로

  • 서림 / 西林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설림군(舌林郡)이었는데, 신라시대에 설리정(舌利停)을 두었고, 757년(경덕왕 16) 서림군으로 바꾸어 남포(藍浦)와 비인(庇仁)을 영현(領縣)으로 하였으며 웅주(熊州)에 예속시켰다. 1018년(현종 9) 가림현(嘉林縣)에

  • 서안평 / 西安平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에서 압록강 맞은편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시대의 지명. 이 지역은 요동지역과 평양방면을 연결하는 교통로상의 요지였다. 만약, 이곳을 고구려가 장악하면, 낙랑군과 대방군을 고립시킬 수 있다. 그러한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이곳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고구려와

  • 서호 / 西湖 [지리/인문지리]

    서울특별시 마포에서 서강에 이르는 15리 지역에 대한 조선시대의 옛 지명. 이 지역은 조선시대에 번창했던 어항이며 물자를 육지로 실어내리는 포구였다. 행정상으로는 한성부(漢城府)의 성저십리(城底十里)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한성부 관할하에 들었다. 이 지역에 경창(京倉)이

  • 서화 / 瑞和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인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옥기현(玉岐縣, 또는皆次丁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치도(馳道)로 고쳐 양록군(楊麓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때서화(瑞和, 또는 瑞禾ㆍ瑞城)로 고쳐 회양(淮陽)의 속현으로 하였고, 조선 세종 때인제현에

  • 석두성 / 石頭城 [지리/인문지리]

    삼국시대의 성.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면주도경(沔州圖經)에 따르면, 면주는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백제가 서로 공취하여 창고를 석두성(石頭城)에 두었다고 한다. 면주는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일대를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이곳에 곡식을 쌓아 두고 수군의

  • 석성 / 石城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진악산현(珍惡山縣)이었는데, 686년(신문왕 6) 석산(石山)이라 고치고, 757년(경덕왕 16) 부여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 석성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공주에 예속시켰으며, 1172년(명종

  • 석주 / 石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강계 지역의 옛 지명. 이 지역은 본래 고구려의 땅이었는데 뒤에 발해ㆍ여진 등이 이 땅을 차지하였다. 본래 독로강(禿魯江)이었는데, 1361년(공민왕 10) 처음으로 진(鎭)을 설치하고 만호(萬戶)를 두었으며, 뒤에 북계(北界)의 관할에 넣었다. 이 시기의 관

  • 석주 / 碩州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연백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동음홀(冬音忽, 또는 冬三忽)이었는데, 신라 때 해고군(海皐郡)으로 하였고, 고려 태조 때 염주(鹽州)로 고쳤다. 고려 현종 때 군을 폐하여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속하게 하였고, 1217년(고종 4) 이 고을 사람이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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