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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 金誠一 [종교·철학/유학]
1538-1593. 조선 선조때의 성리학자. 아버지는 김진이며, 어머니는 여흥 민씨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68년 과거급제하였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건너가 실정을 살피고 침략이 없을 것이라 보고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유성룡의
김성일 종가 전적 / 金誠一宗家典籍 [사회/가족]
조선전기 문신·학자 김성일의 종손가(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소장된 유학서.종가유물. 이 전적들은 보물 제905호로 지정된 것들로 56종 261책이다.『경자자체(庚子字體)』·『사기(史記)』등 간본(刊本) 28종 176책, 김성일의 자필본인『경연일기(經筵日記)』
김성일유서 / 金誠一諭書 [역사/조선시대사]
1592년 문신·학자 김성일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등의 관직에 제수한 교서. 종가유물. 이 유서는 1592년(선조 25)에 선조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된 김성일에게 내린 문서이다. 1987년 3월 7일에 보물 제906호로 지정된 김성일 종가 고문서 일괄 17종 24
김성일종가고문서 / 金誠一宗家古文書 [사회/가족]
조선전기 문신·학자 김성일의 종손가에 소장된 문서.종가문서. 이 고문서들은 보물 제906호로 지정된 17종 242점이며,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의 김시인(金時寅)이 소장하고 있다. 이들 고문서는 30여 종 1만 점 중에서 선별, 지정한 것이다. 교서와 유서는 임
김성탁 / 金聖鐸 [종교·철학/유학]
1684(숙종 10)∼1747(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할아버지는 생원 김방렬, 아버지는 김태중, 어머니는 김여만의 딸이다. 1735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737년이현일의 신원소를 올렸다가 왕의
김성택 / 金聖澤 [역사/근대사]
1897-1950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안주 출신. 안주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0년 6월에 대한독립단과 대한청년연합회의용대가 합류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이 조직되자 결사대원이 되었다. 1920년 8월 미
김성호 / 金性豪 [종교·철학/유학]
1659년(효종 10)∼1720년(숙종 46). 조부는 공조정 김민교이다. 부친 승지 김재현과 모친 청송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첨정 한지원의 딸이다. 학문에 뜻을 두어 갖가지 성리학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였다. 학덕으로 인해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김성호 / 金聖灝 [역사/근대사]
189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투옥되었다.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정의단 임시군정부에 가입, 활약하였다. 1920년 9월 1일 국내에 잠입했다가 체포되어 징역 15년 언도를 받고, 마포·신의주에서 복역하였다.
김성흠 / 金聖欽 [종교·철학/유학]
1682년(숙종 8)∼1757년(영조 33).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는 김시온, 부친은 김구중, 모친은 이표의 딸이다. 이동완과 이현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외조부 이표에게 나아가 문장을 배웠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이양신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의병을 일
김세겸 / 金世謙 [종교·철학/유학]
1593~1646. 조선 중기의 문신. 부친은 김류이다.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여 참봉에 제수되었다. 1545년(인종 1)에 윤원형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남해로 귀양을 갔다. 아들 김영이 경학으로 천거되어 찰방에 제수되었다.
김세균 / 金世均 [종교·철학/유학]
1812년(순조12) ∼1879년(고종16).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복근, 아버지는 김병문, 어머니는 송재덕의 딸이다. 현감인 큰아버지 김병광에게 입양되었다. 1841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제학·대사성·이조참의·경상도관찰사·대사헌
김세락 / 金世洛 [종교·철학/유학]
1804년(순조 4)∼1873년(고종 10).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김종백이다. 정재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마고산에 서당을 지어 동생 양몽재 김재락과 함께 자연을 벗 삼고 독서로 소일하며 은거하였다. 문집으로《삼오당문고》가 전한다
김세만 / 金世萬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 상인·무인. 서울의 서강에 살았는데 장사를 위해 쌀 100여 석을 사서 배에 싣고서 황해도 용매진에 이르렀을 때 배가 뒤집혀 거의 물에 빠져 죽을 뻔하였는데 구조된 일이 있었다. 때마침 흉년이 들자 자신의 쌀은 없었던 것으로 치고 진졸 구제에
김세영 / 金世榮 [종교·철학/유학]
1878년(고종 15)∼1941년. 일제 강점기 한학자. 부친은 김제상이다. 동정 이병호와 면우 곽종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1년(광무 5) 측량 기술을 배워 관직에 나아가려 하였으나 삭발과 양복 입기를 강요받자, 가난하더라도 선비의 의리를 지키겠다며 임용을 거
김세용 / 金世用 [역사/근대사]
1907-1966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공주. 대구 출신. 1940년 4월 중국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하였으며, 그뒤 광복군으로 귀속되었다. 그뒤,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특과총대원대 한청반(中央戰時幹部訓練第四團特科總大員隊韓靑班)에서 군사
김세용 / 金世鏞 [종교·철학/유학]
1673년(현종 14)∼1742년(영조 18).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좌랑 김학배, 외조부는 개성 선무랑 고이절, 처부는 도이망이다. 적암 김태중·갈암 이현일·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제산 김성탁과 도의로써 교의를 맺었으며, 평생을 처사로 지냈다. 만년
김세탁 / 金世鐸 [역사/근대사]
1874-1920년. 독립운동가. 일명 봉수(鳳洙). 평안북도 정주 출신. 신민회(新民會)회원으로 1911년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징역 5년을 언도받아 복역하던 중 1913년 제2심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1914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
김세평 / 金世平 [종교·철학/유학]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증조부는 김광재, 조부는 김경룡, 부친은 진주목사 노암 김종일이다. 1665년(현종 6)에 건원릉참봉을 지냈고 익위위수에 임명되었다. 외직으로 두 고을 다스려 모두 훌륭한 치적을 남겼으며 청백리로 뽑혔다. 숙종 때 훈련원 대장으로 제수
김세필 / 金世弼 [종교·철학/유학]
1473(성종 4)∼1533(중종 2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첨정 김훈, 어머니는 송학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전라도관찰사,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십청헌집』4권이
김세호 / 金世鎬 [종교·철학/유학]
1806(순조 6)∼1884(고종 21). 조선 후기의 문신. 황주목사 김진교의 아들이다. 경상좌도암행어사로 탐관오리들을 숙청하였다. 후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침수지를 고지대로 이주·포항진 복설·해안방비 강화 등에 힘썼다. 그 후 직무 태만과 변흔으로 유배되었다 풀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