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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전기
임계영 / 任啓英 [종교·철학/유학]
1528(중종 23)∼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아버지는 희중이다. 1576년(선조 9)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진보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전 현감 박광전, 능성현령 김익복, 진사 문위세 등과 보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전라우도 의병장
임고서원 / 臨皐書院 [종교·철학/유학]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있는 서원. 1553년(명종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몽주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임고면 고천동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54년에 ’임고‘라 사액,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현재의 위치로 이건, 이듬
임광재 / 任光載 [종교·철학/유학]
?∼1495(연산군 1). 조선 전기의 부마. 할아버지는 원준, 아버지는 사홍이다. 예종의 딸인 현숙공주의 남편으로 1475년(성종 6) 숭덕대부 의빈부의빈이 되었으며, 1485년 숭덕대부 풍천위, 1492년 풍천위가 되었다. 유배 도중 병이 나 강릉 우계현으로 유배지
임벽당김씨 / 林碧堂金氏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임벽당집』을 저술한 시인. 본관은 의성(義城). 별좌(別座) 김수천(金壽千)의 딸이며, 기묘사화 때 고향인 한산(韓山)으로 돌아가 은거한 유여주(兪汝舟)의 계실이다. 시집으로 『임벽당집』이 규장각과 일본인 다카하시[高橋亨]에게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
임실향교 / 任實鄕校 [교육/교육]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에 있는 향교. 1413년(태종 1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일부 소실되었다가 1854년(철종 5)김성근(金性根) 등이 대성전을 중수하고, 1869년(고종 6)
임제 / 林悌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수성지」·「화사」, 『임백호집』 등을 저술한 문인. 임제는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스승이 없었다. 20세가 넘어서야 성운(成運)에게 배웠다. 1570년(선조 3) 22세 되던 겨울날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가는 길에 쓴 시가 성운에게 전해진 것이 계기가
임치도진 / 臨淄島鎭 [정치·법제/국방]
전라도 함평현에 있던 수군의 거진. 『신증동국여지승람』권 36 함평현 관방조에 “臨淄鎭在縣西七十七里 與靈光郡臨淄島相對 有右道水軍僉節制使營 所管 黔毛浦 法聖浦 多慶浦 木浦 於蘭浦 群山浦 南桃浦 全甲島”라 하였다. 이 기사 및 대동여지도 제18로 보아 임치도진보다는 임치
임피향교 / 臨陂鄕校 [교육/교육]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에 있는 향교. 1403년(태종 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0년(인조 8)에 이전, 중건하였으며, 1710년(숙종 36)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임해진 / 臨海鎭 [정치·법제/국방]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진. 고려 초에는 장리현(長利縣)이었는데, 서희가 여진을 쫓은 다음 이 곳에 성을 쌓았다. 현종 때는 거란의 침입을 받았고, 고종 때는 몽고병의 침입을 받는 등 외침이 잦은 곳이었다. 공민왕 때 곽산군(郭山郡)이 된 뒤
입거청 / 入居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중종 때 함경도·평안도의 사민업무를 주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청. 중종초에 입거청을 설치하고 좌찬성 이손을 입거체찰사로 임명하여 사민업무를 맡게 하였다. 이때는 주로 죄인들을 입거시켰는데, 특히 국가의 환곡을 10석 이상 포탈한 자들을 양계지방으로 전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