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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종교·철학
안극함 / 安克諴 [종교·철학/유학]
?∼1641(인조 19).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준이다. 1625년(인조 3) 무과에 급제,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이립과 함께 용천의 소위포에서 후금군의 배후를 위협하는 의병활동을 전개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1641년 최효일·차예량 등과 병자호란의
안달삼 / 安達三 [종교·철학/유학]
1837년(헌종 3)∼미상. 조선 말기 유학자. 매계 이한진을 사사하였으며, 1883년(고종 20)에는 초시에 합격하였다. 당시 제주에 유배 온 면암 최익현과 교유하면서 도덕과 학문을 겸비한 선비로 칭찬을 받았다. 노사 기정진을 사사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장성으로 이사하
안명하 / 安命夏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은사(1682∼1752).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성리학과 예학에 전념하였다. 이황의 학통을 이었으며 저서로《배운록》·《송와집》등이 있다.
안문개 / 安文凱 [종교·철학/유학]
?∼1338(충숙왕 복위 7). 고려 후기의 문신. 1321년(충숙왕 8)에 좌대언이 되었다. 왕을 따라 귀국한 뒤에 첨의참리가 되었고, 1327년(충숙왕 14)에는 왕이 원나라에 있었을 때 충절을 바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으며 순흥부원군의 호를 받았다.1338년 찬
안민학 / 安敏學 [종교·철학/유학]
1542(중종 37)∼1601(선조 34).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아버지는 담이다. 1580년(선조 13)에 이이의 추천으로 희릉참봉이 되었다. 1583년에 사헌부감찰이 된 뒤, 관례에 따라 외직으로 나아가 대흥·아산·현풍·태인 등지의 현감을 두루 거치고, 전주의
안방준 / 安邦俊 [종교·철학/유학]
1573(선조 6)∼1654(효종 5).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중관, 처는 정승복의 딸이다. 중돈에게 입양되었다. 박광전·박종정에게서 수학, 1591년(선조 24) 파산에 가서 성혼의 문인이 되었다. 지평, 공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편저로 ≪항의신편≫·≪이대
안성구포동성당 / 安城九苞洞聖堂 [종교·철학/천주교]
경기도 안성시 안성동에 있는 천주교 성당. 1970년까지 안성본당으로 불리던 이 성당은 1901년 아산 공세리 본당에서 분할, 창설되었다. 초대주임신부로 부임한 공베르(Gombert, A.)가 전에 군수를 지낸 백씨의 집을 사서 임시성당으로 사용해오다가, 1922년에
안세갑 / 安世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3∼1763). 1725년(영조 1) 영조 즉위로 노론이 세력을 잡자, 신임사화 때 노론을 배척한 소론 이광좌·조태억 등이 아직 조정에 있음을 보고 이를 논척하다가 투옥되었으며 곧 풀려나왔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평정되자 선전관으로 임명되
안수 / 按手 [종교·철학/개신교]
기독교 및 유대교의 의례. 구약성서에 의하면 제사의식 중 번제와 속죄제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들은 희생제물을 살해하기 이전에 그 제물들에 손을 얹도록 되어 있었다. 안수는 또한 축복을 하기 위해서도 쓰였다. 오늘날에도 안수는 축복의 원초적인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부
안양암 / 安養庵 [종교·철학/불교]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대한불교원효종의 총본산인 절. 1926년 이태준이 칠성각을 짓고 창건한 뒤 차례로 당우들을 지어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건물로는 대웅전, 관음전, 명부전, 금륜전과 손바닥 크기의 1,500불상이 모셔진 천오백불전, 영각, 산신각, 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