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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김현성필적 / 金玄成筆蹟 [예술·체육/서예]
조선시대 문신이자 서화가인 김현성이 이증(李增)의 절구와 율시 9편을 행서로 필사한 서첩. 보물 제1626호. 필사본, 첩장, 1첩. 39.9×37.0㎝ 이 서첩에는 「취정원수좌하(醉呈元帥座下)」, 「영보정(永保亭)」, 「덕산현(德山縣)」, 「신창산정(新昌山亭)」, 「
김형모 / 金瀅模 [종교·철학/유학]
1856년(철종 7)∼1930년. 조선 말기 학자. 문충공 학봉 김성일의 후손, 부친은 운포 김경락이다. 부인은 함양박씨이다. 서산 김흥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회당 장석영‧석주 이상룡‧장암 김시락‧졸수재 유정호‧범암 유연즙 등과 교유하였다. 스승의 문집《서산집》간행
김혜 / 金寭 [종교·철학/유학]
1566~1624. 아버지는 생원 수길, 어머니 전주이씨이다. 일찍이 서애선생의 문하에 나아가 배워 선조 경인(1590)년에 진사시에 합격, 을사(1605)년 전시에 뽑혀 병오(1606)년에 호조좌랑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었다. 임란 때는 통판으로서 칠로의 군진에서 활약
김호 / 金虎 [역사/조선시대사]
1534 ∼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무신.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봉사로 관직생활을 끝내고, 향리에 거주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언양에서 진격해온 적의 기병 500명과 맞서 싸워 적을 궤멸시키고 전사하였다. 예
김홍근 / 金弘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8∼1842). 이조·공조·병조의 판서와 홍문관제학·우참찬 등을 지냈다. 대사헌으로서 풍양조씨와 안동김씨의 세력다툼에 대한 상소를 올렸다. 의정부좌참찬으로 기용되었다. 좌의정에 올랐다가 판중추부사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김홍도 / 金弘道 [예술·체육/회화]
조선 후기의 화가(1745∼?). 산수·도석인물·풍속·화조 등에 재능을 발휘하였고,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뛰어났다. 만년에 농촌이나 전원 등을 소재로 한국적 서정과 정취가 짙게 밴 그림을 그려 독창적 화풍을 이룩하였다. 작품으로〈단원풍속화첩〉·〈금강사군첩〉·〈선인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 金弘道筆群仙圖屛風 [예술·체육/회화]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 국보 제139호.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고 세로 132.8㎝, 가로 575.8㎝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으로 원래 8폭의 연결 병풍 그림이었으나 현재 3개의 족자로 분리되어 있다. 화면의 끝 부
김홍도필 병진년 화첩 / 金弘道筆丙辰年畵帖 [예술·체육/회화]
1796년(정조 20)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화첩. 보물 제782호. 종이 바탕에 수묵 담채로 그렸고 세로 26.7㎝, 가로 31.6㎝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김홍도가 1796년(정조 20)에 그린 산수(山水)와 화조(花鳥) 그림 20폭으로 이루
김홍도필 산수인물도 / 金弘道筆山水人物圖 [예술·체육/회화]
조선 후기에 김홍도가 그린 산수인물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원(畵員)으로 꼽히는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추정)가 그린 「산수인물화」로, 화면은 거대한 절벽과 폭포, 그리고 배를 탄 어부들로 구성되었다. 오른쪽 여백에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이 쓴 「어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 金弘道筆風俗圖畵帖 [예술·체육/회화]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풍속화. 보물 제527호. 25엽으로 이루어진 화첩으로, 종이 바탕에 수묵과 옅은 채색으로 그렸으며 크기는 각각 세로 27㎝, 가로 22.7㎝이다. 이 화첩 그림들은 주변의 배경적 설명을 간단하게 처리하고 풍속 자체에 역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