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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 김도숙 / 金道淑 [역사/근대사]

    1872(고종 9)-1943. 한말의 의병. 별명은 제헌(濟憲). 전라남도 나주 출신. 1907년 11월 의병장 심남일(沈南一)이 의병을 일으키자 휘하에 들어가 도통장(都統將)이 되었다. 1908년 전라남도 강진 오치동전투, 남평 장담원전투, 해남 성내전투 등에 참여하

  • 김도원 / 金道源 [역사/근대사]

    1895-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무장독립단체인 대한독립보합단(大韓獨立普合團)에 들어간 후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23년 집행되었다.

  • 김도태 / 金道泰 [역사/근대사]

    1891-1956.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졸업하고 명신중학교(明新中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성여자상업학교의 교장과 조선지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김도행 / 金道行 [종교·철학/유학]

    1728년(영조 4)∼1812년(순조 12). 조선 후기 성리학자. 약봉 김극일의 후손, 부친은 김정탁, 모친은 이제태의 딸이다. 백부 김성탁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백부가 광양에 유배되자, 종형 김낙행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경전과 사서를 두루 익혔다. 1765년(영조 4

  • 김도현 / 金道賢 [역사/근대사]

    1893-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장연(長淵)이다. 1919년 장규섭(長奎燮) 등이 결성한 비밀 결사단체 대한적십자사청년단(大韓赤十字社靑年團)에 가담하였다. 이때 권총을 구입하여 일본 경찰 및 친일인사들을 처단하고, 임시 정부가 발행한 독립공채(

  • 김도현 / 金道鉉 [역사/근대사]

    1852(철종 3)-1914. 조선 후기의 의병장. 일제의 침략 의도가 드러나자 의병을 모아 함창·태봉·삼척 등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에도 의병을 일으켰으나 결국 영해의 관어대(觀魚臺)에서 투신하였다. 저서로 <벽산선생창의전말>이 있다.

  • 김도화 / 金道和 [종교·철학/유학]

    1825년(순조25) ∼1912. 조선 후기의 학자·의병장. 안동군내 유림대표로 거의통문을 발표하였다. 1896년 의병장에 추대되어 안동관찰부를 점령하고 무기를 빼앗았다. 태봉전투에 참전하였다. 항의문과 규탄문을 통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1983년 건국포장이 내려졌

  • 김돈희 / 金敦熙 [예술·체육/서예]

    항일기의 서예가(1871-1937). 자는 공숙(公叔). 호는 성당(惺堂). 서화협회(書畵協會)를 창립했던 일원으로 제4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안진경·황정견 풍의 해서에 뛰어났고 서예에 관련된 이론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 김동리 / 金東里 [문학/현대문학]

    1913년∼1995년. 일제 강점기 소설가·시인. 자는 시종(始鐘)이고, 호는 동리(東里)인데 호를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다른 이름으로 김창봉(金昌鳳)·김창귀(金昌貴)·김태창(金泰昌)이 있다.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경주(慶州)이다. 부친 김임수(

  • 김동삼 / 金東三 [역사/근대사]

    1878-193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일송(一松). 1913년 여준·이상룡 등과 함께 부민단을 조직했으며, 1918년 지린성 왕칭현에서 서일·여준·유동열·김좌진 등 39명이 민족대표로 서명한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1927년 김좌진·이청천 등과 함께

  • 김동수 / 金東洙 [역사/근대사]

    1916-1982.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광복군 제5지대 간부로 산시성 타이항산에서 적 후방공작을 전개하였다. 충칭에서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장에 취임하여 활동하였다. 사단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국민장이 수여되었다.

  • 김동식 / 金東植 [역사/근대사]

    1883-1945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중화 출신. 천도교인으로 1919년 상원(祥原) 지방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1일 천도교 중화교구의 전도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만세운동계획을 세웠다. 3월 2일에 상원교구 앞에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한 수백명

  • 김동신 / 金東臣 [역사/근대사]

    1871-1933. 의병장. 자는 원표(元表), 호는 청암(淸菴). 충청남도 회덕 출신. 고종 때 무과에 올라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승(秘書丞)을 제수받았다. 1905년 10월 22일 사직소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1906년 봄 최익현(崔益鉉)과 민종식(

  • 김동엽 / 金東燁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 창단감독, 서울방송 전속야구해설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황해도 봉산 출생. 아버지는 선경(善慶)이고, 어머니는 정국화(鄭國華)이며,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황해도 사리원(沙里院) 송화인민학교, 송화고등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6

  • 김동우 / 金東寓 [역사/근대사]

    1896-198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일선(金一鮮)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창선면(昌善面)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 독립선언식에 참가하여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

  • 김동원 / 金東元 [역사/근대사]

    1882-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대동 출신. 1903년에 평양일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906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1년 후 신병으로 중퇴, 귀국하였다. 1910년부터 6년 동안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대성학교(大

  • 김동은 / 金東垠 [역사/근대사]

    1908-1978.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보성 출신. 1929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 5학년 재학중 김종섭(金鍾燮)·박기원(朴基源)·장재성(張載性) 등과 무등산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회합을 갖고 광주고보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1926년 이후 학생비밀결사로서 항

  • 김동인 / 金東仁 [문학]

    1900-1951. 소설가. 평남 평양 사람.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와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 출판법 위반혐의로 4개월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신경향파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를 주장했다. 1924년

  • 김동진 / 金東鎭 [종교·철학/유학]

    1866년(고종3년)~1952. 저자는 19세기 구한말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저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소수서원 원장을 3번이나 역임하고, 후진의 양성을 위해 도강서당을 세웠다는 기록 정도만 남아 있다. 저자는 김흥락의 말년 제자이다. 1

  • 김동철 / 金東轍 [예술·체육/체육]

    1893-미상. 체육인. 경상남도 마산 출생. 마산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 기자로서 조선체육회 발기인회에 참가하였으며 조선체육회 창립준비위원으로 선정되어 조선체육회 창립을 위하여 활약하였고, 그해 조선체육회가 창설되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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