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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김기용 / 金基用 [역사/근대사]
1883(고종 20)-1938. 독립운동가. 일명 명숙(明淑)·사보(士寶). 경상북도 영천 출신. 1928년 1월경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진 주동자 장진홍(張鎭弘)과 만나 영천경찰서 및 영천의 부호 이인석(李仁錫)에게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투척연습을 하며
김기주 / 金基周 [역사/근대사]
1923-미상.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40년대에 일본 군대에 강제로 징집된 후 중국 하남성 형문현(荊門縣)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치되었으나, 조국을 위해 탈출을 감행하였다. 탈출 후 중국 중앙군으로 들어가 중앙군 유격대에 배속되
김기진 / 金基鎭 [언론·출판/언론·방송]
1903-1985. 일제 강점기 문인. 1922년부터 토월회 창립 동인으로 연극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1923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등단한 뒤 문학동인지 《백조》에 가담하였다. 1924년부터 매일신보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적 문학 활동을 표방하기
김기찬 / 金基纘 [종교·철학/유학]
1809(순조9)∼?. 조선 후기의 문신. 김도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성구이고, 아버지는 김주묵이며, 어머니는 이제현의 딸이다. 김용묵에게 입양되었다. 1835년(헌종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42년에 경상우도 암행어사로 활동하고 돌아온 후 지방
김기창 / 金基昶 [예술·체육/회화]
1913년 2월 18일∼2001년 1월 23일. 일제 강점기 예술가. 호는 운포(雲圃)·운보(雲甫). 본적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출신지는 경성이다. 경성 승동보통학교를 졸업, 화가 김은호에게 미술교육을 받았다.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 1942년 9월 제
김기추 / 金基秋 [종교·철학/불교]
1908-1985. 독립운동가·불교지도자. 본관은 김해. 호는 백봉(白峯). 부산 출생. 10세 때까지 제주도에서 자라다가 11세 때 부산으로 이주, 그곳에서 영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제이상업학교에 진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조선사를 교과목에 삽입시킬 것과 일본명으로
김기태승급문서 / 金琦泰陞級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7일. 6품 승훈랑 김기태(金琦泰)를 정3품 통정대부로 가자하는 임명장. 수취인 김기태에 대한 인물정보는 상세하지 않다. 다만 순종황제가 일본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도하기 이전 많은 한국의 관료를 가자, 혹은 승급하였는데 이때 승급된 사
김기하 / 金器夏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701(숙종 27). 조선 후기의 문신. 성리학자 김인후 4세손으로, 아버지는 김형우, 어머니는 허열의 딸이다. 숙종 때의 명신이었던 김수항의 여러 자제들과 깊이 사귀었는데, 벼슬길에는 뜻이 없어 과거에는 응하지 않았으나 학행으로 추천받아 후릉참
김기한 / 金起漢 [역사/근대사]
188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직재(直齋). 일제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며 만주로 망명한 뒤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국내에 잠입하여 중앙본부를 결성하고 군자금을 확보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었고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김기헌 / 金基憲 [역사/근대사]
189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고주(金高洲)이다. 본적은 함경남도 고원군(高原郡)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남촌동(南村洞) 소재 남감리교회 담임목사 정춘수(鄭春洙)는 3월 1일 만세운동을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정보 확인을 위
김기형 / 金基瀅 [역사/근대사]
1887-194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해악(海岳). 만주에서 독립운동과 육영사업을 벌이다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군자금을 모으는데 노력하였다. 병인의용대·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고 한국광복군 창립에 참여하였다.
김기휴 / 金起休 [역사/근대사]
1895-미상.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지금의 제주도 서귀포시(西歸浦市) 성산읍(城山邑) 신풍리(新豐里)에서 출생하여 고성리(古城里)로 이주한 뒤 농사를 지었다. 평소 민족주의(民族主義) 노선인 성산청년회가 주관한 성산면 체육대회의 씨름경기 중 한국인 선원과 일본인
김길통좌리공신교서 / 金吉通佐理功臣敎書 [역사/조선시대사]
1472년 문신 김길통을 좌리공신 4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1축. 보물 제716호. 녹권은 왕명을 받들어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발급하는 것이므로 이 문서와 같이 왕이 직접 내리는 문서는 교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서는 담황색의 생견(生絹: 生絲로 짠 깁
김낙두 / 金洛斗 [역사/근대사]
미상-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하여 곽문(郭文)·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김형식(金衡植)·남정섭(南廷燮)·양규열(梁圭烈)
김낙서 / 金洛西 [역사/근대사]
1890-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경원군(慶源郡)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만주(滿洲) 일대에서도 항일투쟁을 위해 김청봉·김현규·이범윤·진학신·최우익 등을 중심으로 한 의군단(義軍團)이 조직되었다. 이때 만주에서 의
김낙선 / 金樂先 [역사/근대사]
1881(고종 18)-1925.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낙진(洛振). 전라남도 부안 출신. 1909년 의병장 이용서(李用西)의 부대에 가담하여 총기 15정 등으로 무장한 의병 30여명과 함께 고부·부안·태인 등지를 근거로 활동하였다. 같은해 3월 일본군 기병대
김낙용 / 金洛用 [역사/근대사]
1860-191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맹암(孟巖). 천도교에 입교한 뒤 각지를 돌아다니며 교리를 전파하였다. 초산(楚山)에서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신의주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김낙일 김천찰방 해유문서 / 金洛一 金泉察訪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낙일 김천찰방 해유문서. 1806년(순조 6) 3월 19일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3월 20일 경상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이관, 동년 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하였다. 김낙일(金洛一)은 1804년(순조 4) 2월 13일에 본직을 제
김낙행 / 金樂行 [종교·철학/유학]
1708(숙종 34)∼1766(영조 42)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교리 김성탁. 어머니는 무안박씨로 통덕랑 진상의 딸이다. 이재의 문인이었다. 아버지가 이재를 변호하다 유배되자 아버지를 따라가서 봉양하였다. 저서로는《계몽질의》·《구사당집》 등이 있다.
김낙현 / 金洛鉉 [역사/근대사]
1902(광무 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군·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우스리스크 얀치헤 크라브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러시아 니꼴라예프스크이다. 1906년(광무 10) 부모를 따라 아무르 강변의 니꼴라예프스크로 거주지를 옮겨 간 후 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