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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영 / 金龜永 [역사/근대사]
1884-1931.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낙서(洛瑞), 호는 정사(睛沙)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전라북도 진안(鎭安) 출신이다. 증조부는 김사성(金思聲)이고, 조부는 김석기(金奭基)이다. 부친은 김종협(金鍾協)이다. 외조부는 천안전씨(天安全氏) 전명석(全
김구주 / 金龜柱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의 관리(1740∼1786).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오빠이다. 1772년 공조참판으로 있을 때 탕평정책을 위협한다는 명분으로 정조의 외가 인물이었던 홍봉한(洪鳳漢)을 모함하였다. 정조 즉위 후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사도세자의 죽음과도 관련이
김구현 / 金九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20∼?). 증광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바로 홍문관교리에 임명된 후 한성부판윤에 이어서 형조판서·공조판서·궁내부특진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국원 / 金國元 [역사/근대사]
1890-1937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성덕(性德), 호는 송암(松庵)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전라남도 순천(順天) 승주군(昇州郡) 별량면(別良面)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순신(李舜臣) 막하에서 활약한 김대인(金大仁)
김귀동 / 金貴東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마산(馬山)이다. 1924년 10월 마산노동동우회 집행위원을 맡아서, 12월 마산기자단 결성 때 조선일보 마산지국 기자로서 참가하였다. 1925년 1월 마산독서회 창립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간
김규식 / 金奎植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81∼1950). 미국에서 유학하고 고국에 돌아와 활발한 교육·종교활동을 펼쳤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남한단독정부수립안을 거절하고 김구와 연합하여 남북협상을 원칙으로 한 통일을 주장하였다.
김규진 / 金圭鎭 [예술·체육/서예]
1868-1933년. 서화가.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海岡)·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무기옹(無己翁) 등 많은 별호를 썼다. 평안남도 중화(中和)의 농가에서 태어나 외숙인 이희수(李喜秀)로부터 서화의 기초와 한문을 공부하다가, 18세 되
김규철 / 金奎哲 [역사/근대사]
1881-1929.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규철(奎喆). 호는 비장(飛將). 충청북도 단양 출신. 1907년 군대해산 뒤 단양·죽령·청풍·제천·영주·예천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죽령지역에서 4백여명을 인솔하고 다섯 차례나 치열
김극성 / 金克成 [종교·철학/유학]
1474(성종 5)∼1540(중종 35). 조선 중기의 문신. 김남호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중로, 아버지는 진사 김맹권, 어머니는 전삼달의 딸이다. 1498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병조정랑, 장악원정, 서천군수, 장례원판결사, 병조참의, 대사헌, 평안도관찰사,
김극수 / 金極洙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충청북도 영동(永同)이다. 동생으로 사회주의운동가 김두수(金斗洙)와 항일운동 공훈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2006년에 애족장에 추서된 김태수(金台洙)가 있다. 1921년 9월 영동청년회 학예부장에 임명되었다.
김극일 / 金克一 [역사/조선시대사]
1522년(중종 17)∼1585년(선조 18). 문신·학자.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藥峰). 본관은 의성이다. 1546년(명종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교서관정자에 임명되었다. 이후 승문원정자·저작·박사·승정원주서·형조좌랑·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저
김근행 / 金謹行 [종교·철학/유학]
1712(숙종 38)∼?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성균관 진사 시서, 어머니는 은진송씨로 비안현감 이석의 딸이다. 강규환의 문인이다. 세자익위사 세마, 사어, 김포군수, 인천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용재문집』15권이 있다.
김기림 / 金起林 [문학/현대문학]
1908-미상. 시인·문학평론가·영문학자. 호는 편석촌(片石村). 함경북도 성진 출생. 니혼대학(日本大學) 문학예술과를 거쳐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경성중학교(鏡城中學校)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으며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내고, 193
김기범 / 金箕範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기독교인(1868-1920). 1890년에 기독교에 입교, 1893년부터 전도사가 되어 제물포지역에서 8년간 전도사업에 종사하였다. 1901년 서울 상동교회에서 김창식과 함께 북감리교회의 감독 무어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 뒤 황해도 연안지방에서 순회 전
김기보 / 金基報 [종교·철학/유학]
1531년(중종 26)∼1588년(선조 21).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 증조는 김영수, 조부는 승지 김영, 처부는 이문량이다. 금계 황준량은 동서이다. 죽우당 성수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향시에 합격하여 언양‧거창‧회인 등지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문집으로 1850년
김기서강학당 / 金麒瑞講學堂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있는 조선전기 기묘사화에 연루된 김기서 관련 서당.시도유형문화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원래 이 자리에는 전불사(典佛寺)의 불당이 있었다. 1548년(명종 3) 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에 연루되었
김기성 / 金基聲 [역사/근대사]
1900-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계성(金啓成)·김선경(金先敬)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시(安城市)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시의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
김기수 / 金基洙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한국사상 처음으로 복싱동양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체육인. 함경북도 북청 출생. 6·25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12세였던 나이로 전라남도 여수로 피난하여 여항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여수권투체육관 방호남(方虎男) 사범 밑에서 운동을 시작하였다. 선천적으로 권투에 소
김기수 / 金綺秀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32∼?). 187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에조참의·홍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수신사로서 일본에 건너가 본 군사·교육시설 등을 조정에 보고하여 근대문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1876년 일본 수신사로 파견되었다. 저서로는《일동기유》와《수신사
김기용 / 金基容 [역사/근대사]
미상-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이다.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고향에 거주하면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독립군(獨立軍)에게 정보를 제공하였다. 1922년 1월 독립군을 위한 첩보 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