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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 김광제 / 金光濟 [역사/근대사]

    1866-미상. 민족운동가. 충청남도 보령 출신. 1907년 대구에서 출판사인 광문사(廣文社)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부사장 서상돈(徐相敦)과 함께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 國債一千三百萬과報償趣旨書〉라는 격문을 전국에 발송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제의하였다. 그 요지는 대한국

  • 김광진 / 金光振 [역사/근대사]

    1889(고종 26)∼1964년. 독립운동가. 가명 광해(廣海). 평안북도 의주 출신. 3·1운동 때 의주군 광평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한 뒤 조선총독부 경찰의 눈을 피하여 오동진(吳東振) 등과 남만주로 망명하여 청년단조직에 헌신하였다. 1920년 9월 18일에 미국

  • 김광찬 / 金光燦 [정치·법제/법제·행정]

    1597(선조 30)∼1668(현종 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부사 상관(尙寬)이며, 작은아버지인 좌의정 상헌(尙憲)의 양자로 들어갔다. 광해군 때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있다가 1627년(인조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음서(蔭敍)로

  • 김광협 / 金光俠 [역사/근대사]

    1915년∼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회령(會寧)이다. 누나는 김일성(金日成)의 둘째 부인 김성애(金聖愛)이다. 1940년 3월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 총지휘부 경위부대 정치위원을 맡았으며, 하바로프스키회의 결정에 따라 11월부터 소

  • 김굉필 / 金宏弼 [종교·철학/유학]

    1454-1504. 조선 성종, 연산군 때의 성리학자. 1498년 무오사화때 희천에 유배, 갑자사화때 사약을 받고 죽었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소학>을 읽고 실천궁행을 강조했다. <소학>에서 제시한 생활규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그의 도학정신은 조광조의 지치주의 형

  • 김교락 / 金敎洛 [역사/근대사]

    1882-1954.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함평 출신.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있던 중 1917년 6월 정동근(鄭東根)·양재홍(梁在鴻)·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함께 전라남도의 나주·함평·화순 등지에서 자산가를 대상으로 독립운동에

  • 김교선 / 金敎善 [역사/근대사]

    1892-196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시(天安市) 수신면(修身面)이다. 1919년 3월에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홍일선(洪鎰善)과 함께 충청남도 천안시 갈전면(葛田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시행하기로 계획하였다. 3

  • 김교신 / 金敎臣 [종교·철학/개신교]

    1901-1945. 함경남도 함흥 출신. 종교인. 교육자. 1918년 함흥농업학교를 졸업, 일본에 건너가 동경세이소쿠영어학교(東京正則英語學校)에 들어갔다. 1922년 동경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에 입학, 그뒤 지리·박물과로 전과하여 1927년에 졸업하였다. 동경유학 당시

  • 김교영 / 金敎永 [역사/근대사]

    1858-192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현 경기도 하남시) 동부면(東部面)이다.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望月里: 현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의 구장(區長)으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 김교일 / 金敎逸 [역사/근대사]

    1884-1940.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자는 평중(平仲)이고, 호는 영암(永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덕치면(德峙面)에서 태어났다. 계림군(鷄林君) 김곤(金梱)의 18세손이다. 동학 접주 김학원(金學遠)의 3남으로 태어났다.

  • 김교적개공신교서 / 金嶠敵愾功臣敎書 [역사/조선시대사]

    1467년 무신 김교(1428~1480)를 적개공신 1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3호. 김교의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고경(高卿)이다. 판예빈시사 시로(時露)의 아들로 무과에 급제, 벼슬길에 오른 뒤 입사한 훈련원판관을 거쳐, 부호군이

  • 김교창 / 金敎昌 [역사/근대사]

    1889-1959. 독립운동가. 경기도 강화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홍면(洪) 등이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의 면사무소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송산면 뒷산

  • 김교필 / 金敎弼 [역사/근대사]

    1867-194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만산(萬山)이고, 호는 화암(化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운암면(雲岩面) 화암리(化菴里) 출신이다. 아버지는 김학원(金學遠)이며 김덕원(金德遠)으로도 불리었다. 1894년(고종 31) 갑

  • 김교헌 / 金敎獻 [역사/근대사]

    1868-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대종교인.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보화(普和). 1885년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참의·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대중계몽운동을 벌였다. 나철(羅喆)의 뒤를 이어 대종교의 제2대 교주에 취임

  • 김교헌승급문서 / 金敎獻陞級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5일. 규장각부제학 김교헌(金敎獻)을 종2품 가선대부에 특승하는 임명장. 경술국치 4일 전의 문서이다. 김교헌은 독립운동가이자 대종교 제2대 교주로 활동한 인물이다.

  • 김교훈 / 金敎勳 [역사/근대사]

    1880-1934.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학로(金學老)·김훈(金勳)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강원도와 충청남도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군대에게 체포되

  • 김구 / 金九 [역사/근대사]

    1876-194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1919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다. 1939년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고, 이듬해 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지휘하였다. 1945년 11월 환국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쳤다. 1948년 남한의

  • 김구 / 金構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김인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극형, 아버지는 관찰사 김징, 어머니는 참봉 이의길의 딸이다. 1682년(숙종 8) 춘당대 문과에 장원해, 전적과 각 조의 낭관을 거쳤다. 형조판서, 우의정을 역임하였다.『육

  • 김구 / 金絿 [종교·철학/유학]

    1488(성종 19)∼1534(중종 29). 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 의몽 증손, 할아버지는 사예, 아버지는 대흥현감 계문, 어머니는 이겸인의 딸이다. 이조좌랑, 정랑, 사간, 홍문관직제학, 동부승지, 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자암집≫, 유품으로는 ≪자암

  • 김구 암살사건 / 金九暗殺事件 [정치·법제/정치]

    1949년 6월 26일 한국독립당 당수 김구가 육군포병소위 안두희에게 권총으로 살해된 사건. 1949년 6월 26일 오전 11시 30분경 육군정복 차림의 안두희는 김구가 거처하던 경교장을 방문하여 면회를 요청, 김구를 만나자 권총을 쏘아 살해했다. 안두희는 현장에서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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