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이여 / 李畲 [종교·철학/유학]
1645(인조 23)∼1718(숙종 44).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식, 아버지는 신하, 어머니는 신후완의 딸이다. 1680년(숙종 6)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 다음 해 홍문록에 등재되고 정자가 되었다. 이어 이조좌랑, 이조정랑, 이조참의, 대사간,
이여빈 / 李汝馪 [종교·철학/유학]
1556(명종 11)∼1631(인조 9).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효신, 어머니는 이귀윤의 딸이다. 한우의 문인이다. 1605년 증광문과 병과로 급제, 이듬해 벽사도찰방으로 나갔으나 1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1610년(광해군 2) 성균관전적으로 등용되었으나 정
이여절 / 李汝節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무신. 1789년(정조 13) 단천부사, 부령부사, 창원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재임시 형장을 남용하여 무고한 백성을 남살하였다는 죄목으로 지평 남이익과 영남암행어사 유경의 탄핵을 받아 1795년 위원에 유배되었다가 같은해 강계의 군졸로 충군
이연응 / 李沇應 [종교·철학]
1818년(순조 18)∼미상. 조선 후기 문신. 부친은 이낙중, 생부는 남연군 이구의 사촌 이화중이다. 1866년(고종 3) 선파유무응제부로 전시에 직부하여 같은 해 별시에서 병과로 급제. 이후 홍문관부수찬·승정원동부승지·이조참의·종정경·이조참판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
이염 / 李琰 [종교·철학/유학]
1538(중종 33)∼1588(선조21). 조선 중기의 학자. 암 후손이다. 조식의 문하생이며, 평소에 최영경·하항·유종지 등 동인들과 친교를 맺고 있었다. 특히『대학』의「성의장」은 몸소 실천하여 체득하려 노력하였으며, 실제로 효우가 지극하여 부모를 섬김과 형제를 사랑
이엽 / 李爗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29∼1788). 1777년(정조 1) 증광문과 병과급제 후 부사과·선조보감찬집랑·전적 등을 거쳐 공조정랑에 이르렀다. 문장·재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주역》에 조예가 깊고, 실학사상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영 / 李栐 [종교·철학/유학]
1670년(현종 11) 10월 19일∼1735년(영조 11) 5월 5일.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는 이함, 조부는 이시명이다. 부친은 이융일, 모친은 김초의 딸이다. 부인은 성문하의 딸이다. 백부 이현일이 별세한 후에는 가학이 실추될까 염려되어 두 형과 함께 학문에
이영 / 李泳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692(숙종 18). 조선 후기의 문신. 시백의 증손, 할아버지는 흔, 아버지는 상윤, 어머니는 허계의 딸이다. 큰아버지 상주에게 입양되었다. 1674년(현종 15) 음서로 후릉참봉이 되고, 곧이어 예빈시봉사를 거쳐 군자감직장을 역임하였다. 그뒤
이영민 / 李榮敏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 아시아야구연맹 한국대표 등을 역임한 체육인. 1905∼1954. 경상북도 출생. 배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에 전 조선축구대표의 일원으로 일본·상해 등지에 원정하여 활약하였으며, 그 뒤 야구로 전향하여
이영범 / 李榮範 [역사/근대사]
1909-1961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공산면(公山面)이다. 1926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에 재학하면서 비밀리에 광주독서회를 조직하였으며, 그해 11월 3일에 일어났던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