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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용문가 / 龍門歌 [문학/고전시가]
1907년진주유씨(晉州柳氏)가 지은 규방가사. 480여 구의 비교적 장편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출가한 지 30년 만에 비로소 친정에 오게 된 감회와, 용문동(龍門洞)에서 모꼬지하는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다. 서두형식에서의 “어화 우리 친○분ᄂᆡ 일ᄌᆞᆼ 소회 드러보소.
용봉집 / 龍峰集 [종교·철학/유학]
황익청의 문집. 3권 1책:목판본, 1935. 문집의 편집은 저자의 10대손인 영조가 맡았다. 권두에는 류동준의 서문, 권말에는 정태진과 후손 영조와 영소의 발문이 있다. 권1에는 부 1편, 시 113수가 실려져 있다. 권2에는 대책과 소 2편, 서 11편, 비문 1편
용산신학교와원효로성당 / 龍山神學校와元曉路聖堂 [종교·철학/천주교]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4가에 있는 건물. 사적 제255호. 용산신학교는 우리 나라 최초의 양옥건물이고, 원효로성당은 서울에서 세번째로 완공된 서양식 성당이다. 용산신학교는 1942년 폐쇄되었지만, 교회측에서 1944년에 성모병원 분원을 이곳에 개설함으로써 일제 말기에
용시용활 / 用時用活 [종교·철학/천도교]
때를 살려서 쓸 것을 강조한 동학의 2대교주 최시형의 가르침. 이것은 본래는 하루 열두 시간을 살려서 쓰라는 의미였으나, 나중에는 넓게 풀이하여 시간, 시기, 시대를 알고 신속히 활용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천도교가 1900년대초에 개화운동을 벌였고 1910년대
용암포사건 / 龍巖浦事件 [역사/근대사]
1903년 러시아가 용암포 및 압록강 하구를 점령하고 조차를 요구한 사건.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조선정부 내에 친러파가 득세하였다. 1903년 6월 친러파 조성협이 삼림감리로 파견, 러시아삼림회사 총무인 모지스코(Mogisko)와 교섭, 7월 20일 용암포조차에 대한
용천불이서선농장소작쟁의 / 龍川不二西鮮農場小作爭議 [역사/근대사]
1925년부터 1932년까지 평안북도 용천 불이서선농장의 소작농민들이 벌였던 소작농민항쟁. 불이서선농장은 불이흥업주식회사가 1912년부터 용천군의 국유초생지와 간석지 5,000여 정보를 불하받아 간척사업을 일으킨 뒤 1915년에 완료한 개척농장이었다. 이곳으로 이주된
용택온천 / 龍澤溫泉 [지리/인문지리]
평안남도 성천군 영천면 용택리에 있는 온천. 원래 500년 전에 발견되었으나, 그 뒤 폐쇄되었다가 1900년경에 다시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온천을 중심으로 온정(溫井)마을이 형성되었고, 특히 경원선과 평남탄광선이 통한 다음부터는 교통이 편해짐에 따라 평양을 비롯한
우계일고 / 尤溪逸稿 [종교·철학/유학]
박수서의 문집. 목판본, 서:이돈우(1877), 간궐후:박주대(1910), 2권1책. 1910년 후손 박주대등이 편집‧교감하여 간행하였다. 권두에는 이돈우의 서문과 연보가 있다. 권1에는 시17제 18수, 권2는 부록으로 박주종이 쓴 행장과 조성교가 찬한 묘지명을 수록
우곡집 / 愚谷集 [종교·철학/유학]
송량의 문집. 목판본, 발:송방유, 송진택(1898), 4권2책. 권1에는 시 21수‧ 부 3편‧ 잠 2편‧ 명 1편‧ 서 15편‧ 통문 1편‧ 잡저 1편이 실려 있고, 권2에는 책 3편‧ 제문 3편‧ 행장 1편‧ 묘지 1편이 실려 있으며, 권3과 권4는 부록으로 가장
우금치전적지 / 牛金峙戰蹟地 [역사/근대사]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78-1에 있는 동학농민군 전적지. 사적 제387호. 1894년 10월 23일부터 25일,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동학농민군과 관군의 격전이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곳. 우금치 혈전은 동학농민전쟁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인 대회전이라고 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