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이숭인 / 李崇仁 [종교·철학/유학]
1347년(충목왕 3)∼1392년(태조 1). 고려 말기의 학자. 아버지는 원구, 어머니는 언양김씨이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으로 일컬어진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숙옹부승이 되고, 성균사성, 동지사사, 첨서밀직사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이숭일 / 李嵩逸 [종교·철학/유학]
1631(인조 9)∼1698(숙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시명, 어머니는 장흥효의 딸이다. 형 휘일·현일이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과거공부에는 뜻을 두지 않고, 경학연구와 심성수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장악원주부, 의령현감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항재
이승건 / 李承健 [종교·철학/유학]
1452(문종 2)∼1502(연산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주 증손, 할아버지는 길배, 아버지는 기, 어머니는 유강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생원시에 합격하고, 148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가 되었다. 이어 성균관전적, 호조좌랑, 동부승지,
이승만 / 李承晩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대통령(1875∼1965).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가, 1910년 7월 프린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20년 12월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에 취임했다가, 1925년 3월 의정원의 탄핵으로 면직되었다. 1948년 8월 정부
이승연 / 李承延 [종교·철학/유학]
1720년(숙종 46)∼1806년(순조 6). 조선 후기 유학자. 조부는 이만부이다. 일찍이 조부로부터 가학의 가르침을 받아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시문에도 뛰어나 상주지방을 중심으로 한 시단인 ‘낙강시회’에 참여하여 많은 연구를 지었다. 수직으로 첨지중추부사를 제
이승증 / 李承曾 [종교·철학/유학]
1515(중종 10)∼1599(선조 32). 조선 중기의 의병. 아버지는 계간, 어머니는 영천이씨이다. 김대유의 문인이다. 1558년(명종 13)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여 추천으로 건원릉참봉, 사옹원제조, 상의원제조, 상서원직장, 종부시첨정, 사도시직장을 지냈다. 저서로
이승택 / 李承澤 [종교·철학/유학]
1815년(순조 15)~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이훈, 조부는 이정주이다. 부친은 이소, 생부는 이흡이다. 외조부는 유도환이고, 처부는 홍익신이다. 1844년(헌종 10) 증광시에 병과 14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집의‧부호군 등을 역임하였다.
이승훈 / 李承薰 [종교·철학/천주교]
조선 후기의 천주교인(1756∼1801). 정약전 4형제와 처남매부간이다. 1783년 동지사 서장관 부친을 따라 북경에 가서 세례 받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이다. 귀국 후 한국천주교회를 창설, 미사집행과 천주교리 등을 강술하다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다.
이승훈 / 李昇薰 [종교·철학/유학]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가(1864∼1930). 무역업에 종사해 부를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강명의숙·오산학교를 개교했다. 물산장려운동·민립대학설립운동 등에 가담했으며, 조선교육협회에도 관여하는 등 활동 범위가 매우 넓었다. 죽기 직전 자기의 유골을 생리학 표본으로
이승희 / 李承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독립운동가(1847∼1916). 평생 위정척사운동을 하였다. 1908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망명하여 유인석·이상설 등과 함께 국외독립운동을 하였다. 1914년에는 한인공교회를 창립하고 유교의 진흥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유고로는《한계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