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총 10,287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김세필 / 金世弼 [종교·철학/유학]
1473(성종 4)∼1533(중종 2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첨정 김훈, 어머니는 송학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전라도관찰사,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십청헌집』4권이
김세호 / 金世鎬 [종교·철학/유학]
1806(순조 6)∼1884(고종 21). 조선 후기의 문신. 황주목사 김진교의 아들이다. 경상좌도암행어사로 탐관오리들을 숙청하였다. 후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침수지를 고지대로 이주·포항진 복설·해안방비 강화 등에 힘썼다. 그 후 직무 태만과 변흔으로 유배되었다 풀려나
김세흠 / 金世欽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721(경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김시주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임, 아버지는 주부 김삼기, 어머니는 김광수의 딸이다.1687년(숙종 1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3년 홍문록·도당록에 올랐다. 부수찬·지평 등을 역임하고 1698
김수남 / 金秀南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김영산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익겸, 아버지는 김섭, 어머니는 양희열의 딸이다. 김장생의 문인이다. 1630년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병자호란 때 묘사를 따라 강화도로 피란하였으나, 그곳에
김수문 / 金秀文 [역사/조선시대사]
?∼1568(선조 1). 조선 중기의 무신. 중종 때 무과에 급제, 야인들이 함경도 종성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납치해가자, 1535년(중종 30) 영건만호로서 전투에 참가하여 끌려갔던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동래부사, 지중추부사, 한성판윤, 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
김수삼 / 金秀三 [종교·철학/유학]
1679년(숙종 5)∼1767년(영조 43).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승지 김우벽과 모친 참판 유세정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6세에 19사를 읽었고, 15세에 사서삼경과 외사자집을 읽었다. 향시에는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대과에서는 번번이 실패하자 벼슬길을 단념하였다
김수오 / 金秀五 [종교·철학/유학]
1669년(현종 10)∼1742년(영조 18). 조선 후기의 유학자. 자는 여실(汝實),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문예에 뛰어났으며, 경전을 두루 익혔다. 한수 권상하가 만동사에서 향음주례 할 때 경전과 예법에 대해 질의를 하였으며, 경론에
김수온부조묘 / 金守溫不祧廟 [예술·체육/건축]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김수온을 배향한 사당.시도기념물. 정면 3칸·측면 1칸 반의 목조맞배집 건물. 충청북도 기념물 제48호. 조선 초기의 문신 김수온을 제향하는 사당이다.본래는 1487년(성종 18) 왕명으로 보은읍 종곡리에 세웠는데, 1664
김수인 / 金守訒 [종교·철학/유학]
1563(명종 18)∼1626(인조 4).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참봉 김태을, 어머니는 김휘의 딸이다. 정구의 문인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는 작은아버지 김태허가 울산군수로 화왕산을 지키고 있을 때 옆에서 계책을 세워 많은 전공을 세우게 했다.
김수장 / 金壽長 [문학/고전시가]
1690(숙종 16)∼? 조선 후기의 가인. 김천택과 더불어 숙종·영조 시대를 대표하는 쌍벽의 가인이다. 그가 1769년(영조 45)까지도 자신이 편찬한 가집의 보수작업을 한 것으로 보아 80세가 넘도록 생존하였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