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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강석규 / 姜錫圭 [종교·철학/유학]
1628년(인조 6)~1695년(숙종 21). 조선 중기 문신. 고조는 강극성, 증조는 강종경, 조부는 강진휘이다. 부친 강덕후의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송문길, 처부는 이군미, 숙부는 청백리 강유후이다. 동생으로 강석복‧강석명‧강석구가 있다. 1660년
강석기 / 姜碩期 [종교·철학/유학]
1580(선조 13)∼1643(인조 21). 조선 후기의 문신. 강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령 강유경, 아버지는 이조참의 강찬,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김은휘의 딸이다. 김장생의 제자로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대사간, 대사성, 도승지, 이조판
강석빈 / 姜碩賓 [종교·철학/유학]
1631(인조 9)∼1691(숙종 17). 조선 후기의 문신. 우의정 강사상 현손, 할아버지는 강홍중, 아버지는 목사 강욱, 어머니는 이창원의 딸이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충청도암행어사, 이조좌랑, 경기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강성삼 / 姜聖參 [종교·철학/천주교]
1866년(고종 3)∼1903년. 천주교신부. 주교 리델과 신부 로베르 등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1877년 한국 입국에 성공하자 곧 신학생교육에 착수, 신학생을 선발하여 교육하였다.1890년에 귀국하여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1896년 4월 26일
강성서원 / 江城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늑룡리에 있는 서원. 1643년(인조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문익점(文益漸)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월천사(月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뒤, 1692년(숙종 18)에는 문위세(文緯世)를 추가배향하였다. 1785년(정조 9)에 강성(江城)
강세구 / 姜世龜 [종교·철학/유학]
1632(인조 10)∼1703(숙종 29). 조선 후기의 문신. 대사헌 강첨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학년, 아버지는 강원도관찰사 강호, 어머니는 윤지경의 딸이다. 1676년(숙종 2) 강릉참봉에 기용, 1678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정자, 정언, 수찬, 호조
강세규 / 姜世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62∼1833). 승문원을 거쳐 공조정랑·예조좌랑·감찰·경상도도사·지평·정언·기주관 등을 역임하였다. 책문에서 군포·조곡·전부 등의 조세 방안이 공정하고 현실적이길 논하였다. 저서로는《긍암집》이 전한다.
강세륜 / 姜世綸 [종교·철학/유학]
1761년(영조 37)∼1842년(헌종 8). 조선 후기 문신·유학자. 증조는 강석번, 조부는 강박, 부친은 강필악이다. 외조부는 이재후이다. 1783년(정조 7) 증광시 병과 17위로 문과에 급제한 후, 장령·시독관·승지·종성부사·사간원대사간·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
강세황 / 姜世晃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인서화가·평론가(1713∼1791).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춘 사대부 시·서·화 삼절로서 한국적 남종문인화풍 정착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진경산수의 발전과 풍속화·인물화의 유행, 새로운 서양화법의 수용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는《표암집》이 있다.
강세황 행초 표암유채 / 姜世晃 行草 豹菴遺彩 [예술·체육/서예]
조선 후기의 대표적 문인서화가이자 평론가인 표암(豹菴)강세황(姜世晃)이 역대 명인의 시구(詩句) 가운데 일부 구절을 뽑아 쓴 행초(行草) 서첩. 보물 제1680호. 선장(線裝)으로 장정되어 있는 표지에는 후대에 쓴 것으로 보이는 ‘표암유채(豹菴遺彩)’라는 글씨가 행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