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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종교·철학 > 유학
  • 유의건 / 柳宜健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687∼1760). 과거에 나가지 않고 화계에 서당을 짓고 경사·자집을 두루 섭렵하여, 특히 성력 및 역학에 밝아 제자가 점점 많아지자 그 집을 문회실·난실이라 이름하고, 육영과 저술에만 전념하여〈괘변의의 〉를 남겼다. 저서로는《화계집》8권이 있다

  • 유의양 / 柳義養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8∼?). 대사간·공조참판·부총관 등을 지냈다. 집의 때 백관들의 안일함을 논핵하였다.《춘관지》·《영희전지》를 편찬,《동국문헌비고》수정,《국조오례의》를 보집하였다. 저서로《춘방지》·《춘관통고》가 있다.

  • 유인식 / 柳寅植 [종교·철학/유학]

    1865년(고종 2)∼1928년. 한말의 민족운동가·교육자. 1907년 고향에 협동학교를 창설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1911년 서간도 봉천성 유하현 신흥강습소의 민간조직인 경학사의 교무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2월에는 서울에서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가 창

  • 유장원 / 柳長源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유관현의 아들이다. 1763년(영조 39) 사마시로 나아갔다. 풍의가 준엄하고 단정하였으며 도량이 넓었다. 덕행을 쌓고 부모에게 효성스러웠으며 친구에게는 신의가 있었다. 만년에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 들어가서 고인들이 전하는 학문의 뜻을 터득하였다. 저서

  • 유종춘 / 柳宗春 [종교·철학/유학]

    1720년(숙종 46)∼1795년(정조 19). 조선 후기 문신. 유성룡의 후손, 부친은 나옹 유운이다. 1791년(정조 15) 유성룡의 후손으로서 음직에 천거되어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 수직으로 첨지중추에까지 올랐다. 후에 자헌대부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풍은군에

  • 유주 / 柳澍 [종교·철학/유학]

    1568(선조 1)∼1639(인조 17).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중번이다. 공부를 늦게 시작하였으나, 학업을 크게 성취하여 기재라는 평을 받았다. 1613년(광해군 5)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이첨과 정인홍 등이 폐모론을 주장하자 포의의 신분으로 감히 입궐

  • 유주목 / 柳疇睦 [종교·철학/유학]

    1813년(순조 13) ∼1872년(고종 9). 조선 후기 유학자·의병장. 유성룡의 후손, 증조는 유광수, 조부는 유심춘이다. 1835년(헌종 1) 한성시에, 1842년(헌종 8)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회시에 낙방한 뒤 과거를 단념하고 돌아와 계당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

  • 유중교 / 柳重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832∼1893). 김평묵과 함께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852년 이항로의 명으로 《송원화동사합편강목》을 편수했다. 1876년에는 선공감가감역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881년 척사위정의 소론이 일어나자 김평묵과 함께 춘추의리론을

  • 유중무 / 柳重茂 [종교·철학/유학]

    1652년(효종 3)∼1728년(영조 4).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유인, 조부는 유경즙. 부친 유사와 모친 여흥민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694년(숙종 20)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95년(숙종 21) 이후 사헌부지평·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소론계열의

  • 유직 / 柳稷 [종교·철학/유학]

    1602(선조 35)∼1662(현종 3). 조선 중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복기, 아버지는 우잠이다. 1630년(인조 8)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서사를 탐독하여『중용』과『대학』의 연구에 힘썼다. 저서에 <백졸암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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