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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약혼반지 / 約婚斑指 [생활/민속]

    약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주는 반지. 약혼할 때 반지를 보내는 풍습은 로마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편, <구약성서>에 물건을 살 약속을 하거나 권리를 양도할 때 장갑이나 신을 넘겨주는 풍습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룻기 제4장) 그 관습과도 관계가 있다는 설이 있다.

  • 양기탁 / 梁起鐸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언론인(1871∼1938).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약하였다. 대한협동회를 조직하였다.《대한매일신보》를 발행하고 독립운동에 힘썼다. 상해로 가서 광복운동에 종사하였다. 임시정부 국무령에 추대되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양동강학당 / 良洞講學堂 [생활/주생활]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당. 중요민속자료 제83호. 1870년경 현재 주인의 4대조가 유림에 큰 업적이 있어 후학들이 계를 모아 건축한 여강이씨 문중의 공용서당이며, 같은 문중의 경산서당보다 역사가 깊다.

  • 양복 / 洋服 [생활/의생활]

    서양식으로 만든 의복. 개화기 때 서구와의 직접·간접적인 문화적 접촉을 계기로 양복을 입게되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양장은 1890년대에 등장하였으나 최초의 착용자에 관하여는 윤고라(尹高羅), 경옥당, 엄비(嚴妃) 등 의견이 분분하다. 1900년을 전후한 양복의 도입기

  • 양복공 / 洋服工 [사회/사회구조]

    각종 서양식 의복 및 주문복을 완제품으로 만들거나 개조, 수선하는 사람. 우리 나라에서 양복공이 등장한 것은 19세기말 서양문물의 전래와 함께 양복이 선보이면서부터라고 전해 온다. 20세기 초 점차 양복 입는 사람이 늘어가고 재봉틀이 수입되면서 전문 양복점이 생겨나기

  • 양산 / 陽傘 [생활/민속]

    주로 여자들이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 쓰는 우산. 양산을 처음 사용한 계층은 외국에 주재한 외교관 부인이었으며, 이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현재 전하는 유물은 없고 영친왕의 모후인 엄귀비가 양장을 하고 양산을 든 사진만 전해지고 있다. 1910년대에 선교사가 경영

  • 양어 / 養魚 [경제·산업/산업]

    물고기의 습성에 맞도록 인위적인 시설과 수단을 가하여 물고기를 기르는 일. 정부 차원에서 내수면 개발을 위해 양어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15년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 앞에 온수성 양식용 도립 양식어장을 시설하여 처음으로 잉어새끼를 생산하여 민가에 배부한

  • 양위릉청명제홀기 / 兩位陵淸明祭笏記 [정치·법제]

    능에서 지내는 청명제의 의식 순서를 적은 홀기. 끝에 작은 글씨로 "단 복장은 흑단령, 모, 대, 흑피화로 한다"고 적혀 있다. 일본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이왕직에서 작성하였다.

  • 양잠조합 / 養蠶組合 [경제·산업/경제]

    1910년대 초에 일제가 조선을 잠업원료공급지로 개편하기 위해 만든 조합. 일제는 잠사원료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서 조선에 양잠장려정책을 강압적으로 실시하였고, 이를 담당할 기구로 양잠조합을 각 군과 도(島) 단위로 설치하였다. 그러나 농민들은 뽕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고

  • 양재홍 / 梁在鴻 [역사/근대사]

    1881-미상.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화순 출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1917년 김교락(金敎洛)·정동근(鄭東根)·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동지적 결합을 이룬 뒤, 나주·함평·화순·순천 등 주로 전라남도 지역에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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