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지명 > 고지명 총 60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지명 > 고지명
비안 / 比安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아화옥현(阿火屋縣, 또는 幷屋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비옥(比屋)이라 고쳐 상주(尙州) 소관의 문소군(聞韶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상주목의 임내로 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2) 안정현(安
비옥 / 比屋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옛 지명. 신라의 아화옥현(阿火屋縣, 또는 井屋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비옥으로 고쳐 문소군(聞韶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상주(尙州)에 예속시켰다가 1390년(공양왕 2) 안정현(安貞縣)의 지배를 받았다. 14
비화 / 比火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경주지역의 옛 지명. 757년(경덕왕 16) 안강(安康)으로 고쳐 의창군(義昌郡)의 영현으로 하였으며, 1018년(현종 9) 경주도독부(慶州都督府)에 속하게 하였다.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설치하였다가, 1394년(태조 3) 경주의 임내로 하였다. 18
빈골양 / 賓骨壤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정읍 지역의 옛 지명. 빈골양은 『삼국사기』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미상지분(未詳地分)으로 남아 있다. 빈골양에 관한 기록은 660년(무열왕 7) 백제를 점령한 신라군이 곳곳에서 저항하는 백제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신라의 대군이 고사비성(古沙比城)
사동화 / 斯同火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칠곡지역의 옛 지명. 뒤에 수동(壽同)으로 고치어 성산군(星山郡)의 영현으로 삼았다가 경덕왕 때 인동(仁同)으로 고치었다. 사동화의 지명 유래는 부족장(部族長)이 있었던 대읍(大邑)에서 나왔다. 지금의 가산면·석정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사복홀 / 沙伏忽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안성지역의 옛 지명. 신라 경덕왕 때 적성(赤城)으로 고쳐 백성군(白城郡)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 태조 때 양성(陽城)으로 고치었다. 사복홀의 뜻은 사(沙)가 ‘새’의 뜻이고, 복(伏)이 ‘밝’의 뜻이 되어 새밝골 또는 새밝성이 된다.
사야촌 / 沙也村 [지리/인문지리]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어촌(漁村). 사야부곡의 기능을 추정하기는 어려우나 지형상의 특색으로 보아 주민들이 어염(魚鹽)에 종사했던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에는 사야촌이 부근의 기포(碁浦)나 두모포(豆毛浦)와 함께 해안을 방어하는 군사기지
사연댐 / 泗淵─ [경제·산업/산업]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면 사연리에 있는 댐. 이 댐은 1962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 수계의 물을 얻기 위해 건설된 어스 필 댐(earth fill dam)으로, 높이 46m, 길이 300m이다. 유역 면적 124.5㎢, 홍수위 63.2m, 만수
사정처 / 奢井處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처(處). 문헌상에는 수원부의 남쪽 5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 수원에는 7개의 부곡(部曲)과 3개의 향(鄕), 8개의 처, 3개의 장(莊)이 있었다. 19세기 말 그 중 8개가 없어졌으나 사정처는 그대로 남
사정화 / 史丁火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천지역의 옛 지명. 경덕왕 때 신녕현으로 고쳐 임고군(臨皐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사정화의 지명유래는 이 지역의 지형이 배[舟]의 모양을 가진 데서 나왔다고 한다. 화(火)는 마을을 뜻하므로 분지상에 발달한 옛 도읍이라고 하겠다. 지금의 신녕면 지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