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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김경태 / 金敬泰 [역사/근대사]

    187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했으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으나 일본경찰에 붙잡혀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김경희 / 金慶熙 [역사/근대사]

    1896-195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장환(金章煥)은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을 하다가 쫓기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6일에 제주에 도착하였다. 그는 백부 김시우(金時宇

  • 김계 / 金繼 [종교·철학/유학]

    1527년(중종 22)∼1565년(명종 20). 조선 전기의 문신. 부친은 대호군, 족제 우후 김숭의의 아들이었던 그를 데려다 후사로 삼았다. 나이가 많도록 학문을 모르다가 초당 허엽의 가르침을 받아 분발하였다. 을사사화에 징계된 여러 노선생들이 모여서 강의하고 글을

  • 김계광 / 金啓光 [종교·철학/유학]

    1621(광해군 13)∼1675(숙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극의 증손, 할아버지는 좌찬성 희맹, 아버지는 학, 어머니는 전주유씨로 우잠의 딸이다. 어려서 외할아버지로부터 배웠고, 그 뒤 김상헌·김응조에게도 수학하였다.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 김계금 / 金係錦 [종교·철학/유학]

    1405∼1493. 조선 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효분이다.1445년(세종 27)에 생원이 되고, 1454년(단종 2)에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지평·의성현령을 지냈다. 저서로는『장릉사보』·『강의제현록』·『무오유현록』·『서강일고』등이 있다.

  • 김계락 / 金啓洛 [종교·철학/유학]

    1753년(영조 29)~1815년(순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병조판서 김시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상우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김화진이며, 어머니는 정이검의 딸이다. 178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이 되고 그 뒤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지냈

  • 김계렴 / 金啓濂 [종교·철학/유학]

    1749년(영조 25)~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시형, 조부는 김상우, 부친은 가선대부 경상도관찰사 김화진이다. 외조부는 정리검, 두 명의 부인 파평윤씨와 전주이씨를 두었으며, 동생 김계락이 있다. 1774년(영조 50) 식년시에 생원 3등 46위로 합격하였으

  • 김계선 / 金桂善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대금 명인(1891-1943). 호는 죽농(竹濃). 젓대의 명인이었던 최학봉(崔鶴鳳)을 사사하고 이왕직(李王職) 세악내취(細樂內吹)·이왕직 아악수 등으로 활동하였다.

  • 김계행 / 金係行 [종교·철학/유학]

    1431(세종 13)∼1517(중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 김득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김 혁, 아버지는 비안현감 김삼근, 어머니는 김전의 딸이다. 성균관에 입학하여 김종직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익혔다. 고령현감, 홍문관부수찬,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 김계환 / 金啓煥 [역사/근대사]

    1909-1930. 일제 강점기 노동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계환(金桂煥)이다. 출신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복귀면(福貴面)이다. 1930년 삼림정책의 방향 제시 및 삼림자원 약탈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조직된 삼림조합(森林組合)에 의해 과다한 조합비가 부과되자

  • 김공실 / 金貢實 [역사/근대사]

    1871-1930.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의 의병. 1907년(융희 1) 9월 이석용(李錫庸)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그는 동지 20명을 규합하여 이석용 의병 대장의 진영에 입대하였다. 도로부장(道路副將)으로 임명되어 활약하면서, 전라북도 장수(長水), 진안(鎭安)

  • 김관묵 / 金寬默 [역사/근대사]

    1894-196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일선(一善)이고, 본적은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가조면(加祚面)이다. 1919년 3월 20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場基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일본 헌병들의 무력진압에 의해 김병직(金秉直)·어명

  • 김관보 / 金官寶 [역사/근대사]

    1882-192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석산(石山).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으며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입대한 뒤 김좌진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일본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꾸준한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순국하였다.

  • 김관성 / 金觀聲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애국계몽가·사회사업가. 일명 관성(觀星). 평안남도 평양 출신. 3·1운동 뒤 항일독립투쟁을 목적으로 장명환(張明煥)·이춘산(李春山) 등과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이때 그들은 간도 지방의 교민단체인 한족회(韓族會)의 비활동성에 불만을 품은 현익

  • 김관오 / 金冠五 [역사/근대사]

    1901-1965. 독립운동가. 호는 우당(愚堂). 서울 출신. 1919년 보성중학교 재학중에 3·1운동에 참가하여 선전문을 비밀리에 배부하다가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경성지방검사국으로 이송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뒤 평강에 있는 친척집에 피신

  • 김관용 / 金寬龍 [역사/근대사]

    1900-197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승려. 본적은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해미면(海美面)이다.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면에 위치한 해미공립보통학교(海美公立普通學校)에서 수학하였다. 학생으로 재학 중 1919년 3월 24일 이계성(李啓聖)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 김관주 / 金觀柱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관리(1743∼1806). 1772년 청명류사건을 홍봉한 일파의 사주로 보고, 홍씨의 척신정치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되었다. 정조가 즉위하자 이 소는 당시 왕세손인 정조를 해치려는 음모로 비판되었고, 시벽당쟁의 원인이 되었다. 이후 정순대비가 수

  • 김관준 / 金寬俊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서도소리의 명창. 〈배뱅이굿〉의 창시자. 한말에서 민족항일기 초기에 걸쳐 활약하였다. 평안남도 용강 출신으로 선배인 허득선(許得善)에 이어 서도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용강군 해운면 신덕산(新德山)의 보림사(寶林寺) 주지로 있었던 적이 있으며,

  • 김관호 / 金觀鎬 [예술·체육/회화]

    항일기의 서양화가(1890-?). 고희동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양화가로서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주로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개인전을 열고 회화연구소인 소성회(塑星會)를 개설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지만 그의 작품은 거의 전하는 게 없다.

  • 김광두 / 金光斗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08(선조 41). 조선 중기의 문신. 유성룡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정경세·이전·이준·전식·조정 등과 같이 함창·황령 등지에서 창의하여 의병을 모집, 왜군과 맞서 싸웠다. 1606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효곡서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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