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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김마리아 / 金瑪利亞 [역사/근대사]
1891-194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 1919년 2·8운동과 3·1운동에서 활약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상해애국부인회 간부 등을 지냈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후 1965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김막동 / 金莫同 [역사/근대사]
1887-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9년(융희 3) 김동구(金東九) 의진(義陣
김만수 / 金萬秀 [역사/근대사]
1894-192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회일(會一).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이후 서로군정서에 가담했다. 1924년 최병호·유기동 등과 함께 하얼빈에서 일본 총영사와 일본경찰 10여명을 사살하고 순국했다.
김만와 / 金晩窩 [역사/근대사]
1898-1967. 독립운동가. 일명 순학(舜鶴). 함경북도 무산 출신. 1919년 만주에서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에 입단하였으며, 1922년에는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여 독립군자금 조달과 독립군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뒤 1926년 고려혁명당에 가입하여 정의부(正義府)의
김만풍 / 金萬豊 [역사/근대사]
1886-1962.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제주도 서귀포 성산읍(城山邑) 오조리(吾照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5월 성산포(城山浦)에서 면민씨름 대회를 개최하였을 때 씨름을 구경하던 일본어선단 선원 2백여 명과 지방민과 격투가 벌어져 김명
김명권 / 金明權 [역사/근대사]
1889-1923.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평안남도 덕천(德川) 출신. 이근(利根)의 아들이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기독교에 입교하여 장로가 되었다.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국내에 특파되
김명규 / 金明奎 [역사/근대사]
1893-1977년.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3·1운동의 일환으로 그해 4월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시위 도중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다. 1920년 서울의 황상규(黃尙奎, 일명 白民)의
김명동 / 金明東 [역사/근대사]
1902-1950. 독립운동가·제헌국회 의원. 충청남도 공주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될 때 발기인 34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창립에 기여하였으며, 그뒤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민족통일총본부 사
김명립 / 金命立 [역사/근대사]
1893-1978.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유근(有根). 경상북도 봉화 출신. 성원(聖元)의 아들이다. 1907년부터 의병장 이강년(李康埏)의 부대에서 활동하던 아버지를 귀가시키고 뒤를 이어 의병진에 가담하였다. 경상북도 일대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김명세 / 金明世 [역사/근대사]
미상-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였다. 세린하(細鱗河)에서 조직 활동을 하던 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