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정치·법제 총 2,79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정치·법제
장렬왕후가상존호망단 / 莊烈王后加上尊號望單 [정치·법제]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양주조씨에게 존호를 가상하기 위해 1661년(효종 12) 4월 23일 빈청에서 '공신(恭慎)'이라 의정하고 국왕의 윤허를 바라며 올린 가상존호 망단. 이 망단은 '공신' 한 가지를 써서 단망으로 올린 형태이며, 그 말미에 '계(啓)'자 도장을 찍고
장렬왕후시호등망단 / 莊烈王后諡號等望單 [정치·법제]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가 양주조씨가 승하한 뒤 시호와 휘호, 전호, 능호를 의정하기 위해 1688년(숙종 14) 9월 빈청에서 숙종의 계하를 바라며 올린 대행왕대비시호등 망단. 시호로 '장렬(莊烈)'을, 휘호로 '정숙온혜(貞肅溫惠)'를, 전호로 '효사(孝思)'를, 능호로
장렬왕후존호망단 / 莊烈王后尊號望單 [정치·법제]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양조조씨에게 존호를 올리기 위해 1651년(효종 2) 6월 7일 빈청에서 '자의(慈懿)'라 의정하고 국왕의 윤허를 바라며 올린 존호 망단. 이 존호 망단은 '자의' 한 가지를 써서 단망으로 올린 형태이며, 그 말미에 '계(啓)'자 도장을 찍고 '순
장령 / 掌令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사헌부의 정4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조선건국 직후 태조신반관제에 의하면 사헌부에 정4품의 시사(侍史) 2인이 있었는데, 이 시사가 뒤에 장령으로 바뀌었다. 즉, 1401년(태종 1) 관제개혁 때 시사를 장령으로 고쳐 이것이 그대로 ≪경국대전≫에 성문화되
장례원 / 掌隷院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공사노비 문서의 관리 및 노비소송을 관장하였던 관서. 고려 말부터 여러 차례 노비변정도감이 설치되었다. 1401년(태종 1)에는 노비변정도감을 혁파하고 형조도관을 설치, 1466년(세조 12) 변정원으로 개칭하였다. 이듬 해 8만여 명의 공노비를 관장한다는
장례원주본등본급홍문관선생전사전 / 掌禮院奏本謄本及弘文館先生前私電 [정치·법제]
1898년(광무 2) 11월 경효전의 신탑을 개수할 때 이안제(移安祭) 등의 거행을 위해 장례원에서 올린 주본을 등서한 등본과 홍문관의 관원에게 전달해주기 위해서 쓴 사전 전문. 문서내용은 길일을 추택한 내용, 고유제, 이안제, 환안제 등 각종 제사의 일시를 추택한 내
장릉배알전교 / 長陵拜謁傳敎 [정치·법제]
1797년(정조 21) 8월 15일. 정조가 장릉에 배알하고, 원종의 국구인 능안부원군 구사맹과 서원부부인과 관련된 후손, 능수호인, 주변 백성, 명세 등을 지시한 전교. 내용은 정조가 1734년(영조 10)에 영조와 함께 장릉을 행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인근의 백성에게
장면 / 張勉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정치가(1899∼1966). 1917년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 1919년 서울기독교청년회관 영어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936년 동성상업학교 교장이 되었다. 1946년 정계에 입문, 1955년 신익희·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여 최고위원이 되었다. 1
장면부통령 저격사건 / 張勉副統領狙擊事件 [정치·법제/정치]
1956년 9월 28일 민주당 제2차 전당대회가 열리던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장면 부통령이 저격당한 사건. 장면은 왼손에 권총 1발을 맞았을 뿐 암살은 모면했다. 사건 직후 경찰은 범인이 28세의 제대군인 김상붕이며, 저격동기는 <민주당이 당파싸움만 하는데 실망했고,
장봉 / 掌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궁의 종8품 궁관직. 1428년(세종 10) 동궁내관의 제도에 의하면 종8품이고 정원은 1인이었다. 장장(掌藏)과 같이 직속상관인 사칙(종6품)을 돕고, 그의 지시와 감독을 받았다. 이들의 주임무는 바느질과 길쌈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그 뒤 ≪경국대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