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정치·법제 총 2,79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정치·법제
임병찬 / 林炳瓚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의 의병(1851∼1916). 독립의군부를 전국 조직으로 확대하여 대한독립의군부로 만들었다. 전국적인 의병운동을 계획하였다. 일제에 의하여 체포되어 거문도로 유배되어 병사하였다. 저서로는 《돈헌문집》이 있다.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임영 / 林泳 [정치·법제/법제·행정]
1649(인조 27)∼1696(숙종 22).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군수 일유, 어머니는 임천조씨로 석형의 딸이다. 이단상ㆍ박세채의 문인이다. 1665년(현종 6) 사마시에 장원하였고, 1671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에 뽑혔다. 대표적인 관직으로는 대사
임영신 / 任永信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여성 지도자·정치가(1899∼1977).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의 연통제에 관여하였다. 이후 1948년 상공부장관, 1950년 민의원, 1953년 중앙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 《My Forty Years Fight For Korea》가 있다.
임오군란 / 壬午軍亂 [정치·법제/정치]
1882년 6월 9일 훈국병(訓局兵)들의 군료분쟁(軍料紛爭)에서 발단해 고종 친정 이후 실각한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된 정변. 군민의 불평은 대원군과 연결되어 민씨 및 일본 세력의 배척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군민은 대원군의 밀명에 따라 영돈령부사 이최응 등을 살해하고,
임오동조탄일진표리치사전문홀기 / 壬午東朝誕日進表裏致詞箋文笏記 [정치·법제]
익종(翼宗)의 비이자 헌종(憲宗)의 어머니인 신정왕후의 생일을 맞이하여 치사를 올리고 전문과 표리를 올리는 의식 과정을 기록한 홀기. 1882년(고종 19) 11월 13일부터 12월 초6일까지 준비하는 과정을 일기식으로 기록하였는데, 문서명은 홀기이지만 사실상 의주(儀
임진역영유군인유고 / 壬辰役永柔郡人諭告 [정치·법제]
1593년(선조 26) 7월. 선조가 임진왜란때 평안도 영유현 사람이 머무르길 바라는 상소에 대해 내린 비답이 새겨진 비석을 탁본한 문서. 문서는 앞부분에는 서의 성격을 띠는 임진왜란의 발발부터 임금의 피란, 환도행자 등의 경위가 실려 있고, 중간부터는 선조의 비답 두
임진왜란 / 壬辰倭亂 [정치·법제/국방]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 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임치도진 / 臨淄島鎭 [정치·법제/국방]
전라도 함평현에 있던 수군의 거진. 『신증동국여지승람』권 36 함평현 관방조에 “臨淄鎭在縣西七十七里 與靈光郡臨淄島相對 有右道水軍僉節制使營 所管 黔毛浦 法聖浦 多慶浦 木浦 於蘭浦 群山浦 南桃浦 全甲島”라 하였다. 이 기사 및 대동여지도 제18로 보아 임치도진보다는 임치
임해진 / 臨海鎭 [정치·법제/국방]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진. 고려 초에는 장리현(長利縣)이었는데, 서희가 여진을 쫓은 다음 이 곳에 성을 쌓았다. 현종 때는 거란의 침입을 받았고, 고종 때는 몽고병의 침입을 받는 등 외침이 잦은 곳이었다. 공민왕 때 곽산군(郭山郡)이 된 뒤
입거청 / 入居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중종 때 함경도·평안도의 사민업무를 주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청. 중종초에 입거청을 설치하고 좌찬성 이손을 입거체찰사로 임명하여 사민업무를 맡게 하였다. 이때는 주로 죄인들을 입거시켰는데, 특히 국가의 환곡을 10석 이상 포탈한 자들을 양계지방으로 전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