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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전기
양원 / 良媛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궁의 종3품 내관. 조선 초기 세종 때의 동궁내관제도에 의하면 양원은 세자의 후궁 중 양제 다음의 등급인 정3품이었으나, ≪경국대전≫에 의하면 세자의 후궁 중 두번째 서열로 종3품의 품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내명부 내관으로서 품
양응정 / 梁應鼎 [종교·철학/유학]
1519(중종 14)∼1581(선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담 증손, 할아버지는 이하, 아버지는 팽손, 어머니는 김화의 딸이다. 응태의 아우이다.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공조좌랑, 진주목사, 공조참판,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양잠경험촬요 / 養蠶經驗撮要 [언어/언어/문자]
1415년(태종 15) 태종의 뜻에 따라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農桑輯要)』에서 양잠에 관한 부분을 번역한 책. 불분권 1책. 우대언(右代言) 한상덕(韓尙德)이 이두로 번역하였고, 경상도관찰사인 안등(安騰)이 주선하여 경주에서 간행하였다. 현재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양전 / 量田 [경제·산업/경제]
조세 부과를 목적으로 한 전지의 넓이를 측량. 양전의 방식은 조세법과 함께 변천하였다. 조선초기 양전법은 세종 26년(1444)에 공법이란 이름아래 전분육등·연분구등의 정액세법으로 변경. 전지의 등급이 여섯으로 세분되는 한편, 척의 길이도 종래 농부의 수지에 의거하던
양주향교 / 楊州鄕校 [교육/교육]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향교. 1401년(태종 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6·25 때 폐허화되었던 것을 1959년에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내삼문(內三門)·
양지 / 陽智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용인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수주(水州)의 양량부곡(陽良部曲)이었는데, 1399년(정종 1) 양지현으로 고쳐 감무를 두었고,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고 치소를 광주의 추계향(秋溪鄕)으로 옮겼다. 이 때 죽주(竹州)의 고안(高安)·대곡(大谷)·목악(木岳)
양지향교 / 陽智鄕校 [교육/교육]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향교. 1523년(중종 1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과 명륜당·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양촌응제시 / 陽村應制詩 [문학/한문학]
명나라 태조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권근(權近)에게 친제하여 하사한 ‘태조고황제어제시(太祖高皇帝御製詩)’ 3수와 권근이 명 태조의 명에 의하여 지은 응제시(應製詩) 24수를 모아 간행한 책. 1책. 목판본. 보물 제1090호. 1462년(세조 8)에 간행되었다. 13
양팽손 / 梁彭孫 [종교·철학/유학]
1488(성종 19)∼1545(인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사위 증손, 할아버지는 담, 아버지는 이하, 어머니는 최혼의 딸이다. , 1516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으며, 또 현량과에 발탁되었다. 교리, 정언, 용담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학포유집≫ 2
양현고 / 養賢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물품 공급을 담당한 기관. 1392년(태조 1) 양현고에 2인의 판관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가 태종 때에 판관제도를 폐지하고 사·승·녹사 각 1인씩을 두어 관리하도록 하였다. 영조 때 편찬된 ≪속대전≫에 따르면 대폭 줄여 학전 400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