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총 2,11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황진연 / 黃珍淵 [역사/근대사]
1899-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명천(明川)이다. 1918년 1월 거주지를 만주(滿洲)로 옮긴 후 한의원을 운영하며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당원이 되었다. 1930년 ‘간도 5·30봉기’ 때 길림성(吉林省) 연
황찬서 / 黃贊西 [역사/근대사]
1873-191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찬서(黃贊瑞)이다.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 강한 항일의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의병 활동을 선전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이후 남원(南原)에서 일본 상품의 불매운동, 세금불납, 토지 불매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황창섭 / 黃昌燮 [역사/근대사]
1896-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예천(醴泉)이다. 잡화상·자전거포·철공업 등에 종사하였다. 1925년 예천청년회 검사위원·예천신흥청년회 교양부담당 상무집행위원·사회주의 사상단체 오오회(五五會) 집행위원, 1927년 예천사우회
황창오 / 黃昌五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생. 일찍이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각오하고 있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참가하여 고향인 화성군 태안면 삼정리에서 대중을 규합, 조직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계속 독립사상을 고취
황철 / 黃鐵 [예술·체육/사진]
1864-1930. 사진가·서화가·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야조(冶祖), 호는 어문(魚門)·무명각주(無名閣主). 한성부(漢城府) 출생. 자헌대부 규장각제학 윤수(潤秀)의 둘째 아들이다. 서화가로서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사진에서 떠난 이후로, 1913년부터는
황태성 / 黃泰成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전(黃錢)이다. 본적은 함경북도 길주(吉州)이다. 1920년 1월 길주청년회 결성에 가담하고 상무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25년 2월 함북청년연합회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7년 사회주의 청년단체인 고려공산
황포탄의거 / 黃浦灘義擧 [역사/근대사]
1923년 의열단에서 전개한 의열사들의 항일의거. 1923년 3월 28일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카가 필리핀 마닐라로부터 귀국하는 도중에 상해에 도착하였다. 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항일운동단체인 의열단에서는 다나카를 사살할 것을 결정하고 치밀한 거사 계획을 세웠다. 거사
황학로 / 黃鶴老 [역사/근대사]
1912년-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해주(海州)이다. 사리원동업학교를 다니다가 학업을 중단한 후 중국 상해(上海)로 유학을 떠났다가 사회주의 청년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 회원이 되었다. 그 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서 1929년 9월 도쿄조선노동조합
황학봉 / 黃學奉 [역사/근대사]
1903-1929.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초산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에 가입, 항일투쟁하다가 동부(同府) 제4중대에서 유격대를 조직하므로 참사(參士)를 자원, 편입하였다. 대원들과 같이 봉천(奉天)일대를 근거로 군자금 모집, 일본
황학수 / 黃學秀 [역사/근대사]
1879-1953. 독립운동가. 본관은 창원(昌原). 일명 이국현(李國賢). 자는 필옥(弼玉), 호는 몽호(夢乎). 충청북도 제천 출신. 3·1운동 이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및 군무부 비서국장으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임시정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