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총 2,11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황원보 / 黃元寶 [역사/근대사]
1900-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영흥(永興)이다. 1923년 8월 영흥군 인흥면(仁興面)에서 신창청년회(新昌靑年會) 조직 결성에 가담하고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1928년 2월 간도(間島) 원숭학교(元崇學校)
황원후 / 黃元厚 [역사/근대사]
1897-1920. 평북 용천(龍川) 출신이다. 1915년 만주에 가서 한족회(韓族會)에 가입하고 신성학교(信成學校)교장을 지냈다. 이듬해 한족회 강남구 갑장(江南區甲長)으로 군자금조달에 힘썼으며, 1919년 3·1 운동 때는 강남(江南) 지구 시위운동을 주도했고,
황위현 / 黃渭顯 [역사/근대사]
1891-1966.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난사(蘭史)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간전면(艮田面) 만수동(萬壽洞) 구안실(苟安室: 매천 황현의 서재)에서 태어났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중부(仲父)의 양자로
황윤경 / 黃潤慶 [역사/근대사]
1908-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봉화(奉化)이다. 1924년 3월 대성학원(大成學院)을 졸업하였으며, 1926년 4월 내성(乃城)프로운동자동맹 집행위원직을 맡아 사회주의사상 전파와 동지 규합 등에 힘쓰던 중 1927년 1월 일본 경찰에 체
황인수 / 黃麟秀 [역사/근대사]
1886-194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교하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최창섭 등과 장날을 기하여 계속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군자금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건국표창이 추서되었다.
황재옥 / 黃在玉 [역사/근대사]
1880-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여주(驪州)이다. 1919년 4월 천도교 측의 지시를 받은 경성농업학교 재학생 원필희(元弼熙)가 경기도 여주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책임지고, 여주군의 각 면(面)을 돌며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운동
황재운 / 黃在雲 [역사/근대사]
1887-1939.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본래 증산면 화선리 사람으로, 일을 보러 왔다가 1919년 3월 4일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이 주동한 반석면 상사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반석교회와 원장교회가 중심이 되어 계획하던
황정해 / 黃正海 [역사/근대사]
1918-1941. 일제 강점기 항일군·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혼춘현(琿春縣)이다. 부친 독립운동가 황병길(黃炳吉)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누나 손에 자랐다. 연통랍자(煙筒拉子)의 한인소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대황구
황종국 / 黃鍾國 [교육/교육]
1891-미상. 일제 강점기 교육자·관료. 창씨 개명한 이름은 중산부웅(中山富雄)이다. 본적은 함경북도 부령군(富寧郡) 청암면(靑岩面)이다. 1908년(융희 2) 사립박명학교(私立博明學校) 교감과 1909년(융희 3) 연천(連川)사립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황종화 / 黃鍾和 [역사/근대사]
1878-1950.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진주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경상남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하여 독립선언문과 격문 등을 배포하여 각 지방에서의 만세운동을 선동하였다. 같은해 4월 이운형(李運衡)·이영봉(李永鳳)·김규열(金圭烈) 및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