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총 2,11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황봉신 / 黃鳳信 [역사/근대사]
미상-1918. 황해도 평산(平山) 출신이다. 형 황봉운(黃鳳雲)과 함께 의병이 되어 이진룡(李鎭龍)의 휘하에서 싸우다가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망명했다. 그 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키 위해 입국, 평북 운산금광(雲山金鑛)에서 외국인 금괴
황봉운 / 黃鳳雲 [역사/근대사]
미상-1918년 5월 1일. 황해도 평산(平山) 출신이다. 아우 황봉신(黃鳳信)과 함께 의병이 되어 평산 지역 의병 총사령관인 이진룡(李鎭龍)의 휘하에서 싸웠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망명하였다. 그 후 군자금 모집을 위해 입국하여, 운
황삼룡 / 黃三龍 [역사/근대사]
1916-1976. 광복군. 황해도 신천 출신. 1940년 11월 중국 시안(西安)에 있던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하는 한편,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 특과총대 학원대한청반(中央戰時幹部訓練第四團特科總大學院隊韓靑班)에서 군사·정치 교육을 수료하였
황상규 / 黃尙奎 [역사/근대사]
1890-1941. 독립운동가. 문옥의 외아들이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여기에서도 재정위원에 임명되어 군자금 모금에 힘써 당시 18만원이라는 거액의 자금을 모았다. 1919년 11월 9일 길림에서 김원봉·곽재기 등과 의열단을 조직, 그 일원으로 소위
황석현 / 黃錫顯 [종교·철학/유학]
1882-1951년.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경범(敬範), 호는 설호(雪湖),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출신지는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이다.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의 11세손으로, 처부는 경주(慶州) 김교훈(金敎勳)이다. 유학자로서 시문에도 능하고 견식도 밝
황술조 / 黃述祚 [예술·체육/회화]
1904-1939년. 서양화가. 호는 토수(土水). 경상북도 경주에서 대부호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였다.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도일하여 1930년에 동경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개성의 호수돈고등여자보통학교와 개성상업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작가생활을 시작
황양현 / 黃良鉉 [종교·철학/유학]
1863-1931. 일제강점기의 유학자로, 자는 순상(舜翔)이고, 호는 완월(翫月).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아버지는 황재후(黃載厚)이고, 어머니 나주임씨(羅州林氏)는 임처권(林處權)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행실이 남달랐다. 집이 가난하였으나 독서를 게을
황에스터 / 黃Esther [역사/근대사]
1892-1971. 독립운동가. 일명 애덕(愛德)·애시덕(愛施德). 1913년 동료교사 김경희(金敬喜)와 교회 친구 안정석(安貞錫)과 더불어 비밀결사대인 송죽회(松竹會)를 조직하고, 애국사상이 깊은 학생들을 엄선하여 정신교육을 행하고 송죽회의 자회(子會)설립을 지도하
황영 / 黃暎 [역사/근대사]
1848-1921. 일제강점기 의열(義烈). 남원시(南原市) 사매면(巳梅面) 출신이다. 1910년(융희 4)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되고, 1919년(융희 13) 고종이 승하(昇遐)하자, 나라 잃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자결하였다. 그러나 가족들에
황웅도 / 黃熊度 [역사/근대사]
1901-195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고성(固城)이다. 1920년 12월 고성군 고성면에서 독립운동사상 고취를 위한 청년 중심의 일심회(一心會)를 결성하고 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8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