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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윤원거 / 尹元擧 [종교·철학/유학]
1601(선조 34)∼1672(현종 13). 조선 후기의 학자. 전 아들, 어머니는 윤효지의 딸이다. 1633년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해 1635년 성균관재생으로 들어갔다. 1658년(효종 9)부터 학문과 덕행으로 추천되어 공조좌랑·정랑·종부시주부·성균관사업·사헌부지평
윤원형 / 尹元衡 [종교·철학/유학]
?∼1565(명종 20). 조선 중기의 문신. 계겸 증손, 할아버지는 욱, 아버지는 지임, 어머니는 이덕숭의 딸이다.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1533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수찬, 응교, 좌부승지, 공조참판, 예조참의 등을 역임하였
윤유근 / 尹惟謹 [종교·철학/유학]
1599(선조 32)∼1660(현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홍의이다. 1627년(인조 5) 진사시에 합격하여 공릉참봉이 되고 의금부도사·군자감판관·형조좌랑·호조좌랑 등을 거쳐 의성현감이 되었다. 이 무렵 허적 등 남인들에 의하여 양민을 압박하여 노비로 삼았
윤유기 / 尹唯幾 [종교·철학/유학]
1554년(명종 9)~미상. 조선 중기 문신. 부친은 윤홍중, 생부는 윤의중이다. 형은 윤유심이다. 부인은 구운한의 딸이다.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헌납, 병조참지, 경주부윤, 남원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윤유심 / 尹唯深 [종교·철학/유학]
1551~1612. 윤의중의 큰아들이다. 1576년에 동생과 나란히 생원시에 합격했다. 관직은 장단부사, 예빈시부정을 지냈다. 아버지인 윤의중이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관작이 회복되지 못하자 동생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상소를 올려 결국 복관되었다
윤을수 / 尹乙洙 [종교·철학/천주교]
1909년∼1971년. 천주교 신부·교수·사회사업가. 충청남도 예산 출신. 1932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1938년 프랑스 소르본느대학에서 신부로서는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취득 로마 라테란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48년 교황청전교회 한국지부장, 성신대학 학장(2대), 서
윤의미 / 尹義美 [종교·철학/유학]
1612~1636. 윤선도의 둘째 아들이다. 1630년 진사가 되었는데, 25살의 짧은 삶을 살다 갔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재예가 뛰어났으며, 천성이 온량하고 효우가 남달랐다. 20살이 되기 전에 문학에 매진하여 윤선도의 총애를 받았다.
윤의중 / 尹毅中 [종교·철학/유학]
1524(중종 19)∼? 조선 중기의 문신. 경 증손, 할아버지는 효정, 아버지는 구, 어머니는 임휴의 딸이다. 선도의 할아버지이다. 1548년(명종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정원주서·저작 등을 거쳐 1553년 부수찬이 되고, 이듬해 검토관을 역임하였다.
윤이명 / 尹以明 [종교·철학/유학]
1629년(인조 7)∼1682년(숙종 8). 윤계의 아들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36년(인종 14) 병자호란에 아버지와 형을 모두 잃어 고아가 되었다. 효종 때 왕의 특지로 참봉에 등용되었다. 1660년(현종 1) 군위현감에 이르렀다. 문장에 능했고 전서‧예서에
윤이석 / 尹爾錫 [종교·철학/유학]
1626~1694. 어려서부터 문예에 뛰어났으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숙종 무오년 음사로 선공감역에 제수되었고 그 해 가을 이산현감에 제수, 경신년 가을 고향으로 돌아왔다. 기사(1689)년 봄 사복시주부에 제수, 한성부판윤, 종친부전부 등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