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22,135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검색결과
최유선 / 崔惟善 [종교·철학/유학]
984 ∼1075(문종 29). 고려 중기의 문신. 충의 아들이다. 1030년(현종 21) 과거에 급제하여 7품으로 한림원에 들어갔다. 그 뒤 1047년(문종 1) 어사잡단을 거쳐 1052년 형부상서를 역임했다. 판상서예부사를 거쳐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문하시중이
최윤덕 / 崔潤德 [종교·철학/유학]
1376(우왕 2)∼1445(세종 27). 조선 전기의 무신. 아버지는 운해이다.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국경의 수비에 나가 있어 한마을에 사는 양수척에 의하여 양육되었다. 체찰사 이종무와 함께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평안도도절제사,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
최익대 낙안군수 해유문서 / 崔益大 樂安郡守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784년(정조 8) 9월 30일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0월 초8일 수전라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 이관, 1785년(정조 9) 12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하였다. 최익대(崔益大)는 1780년(정조 4) 12월 21일에
최익성전 / 崔翼星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 1책. 필사본. 편말(篇末)에 ‘계축정월이십구일필서’라 적혀 있으며, 뒷 부분에 「삼옥삼주기(三玉三奏記)」라는 소설도 함께 들어 있다. 「최익성전」은 전면 97면으로서, 결말부의 마무리가 되어 있지 않은 채, 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절정
최익현 / 崔益鉉 [정치·법제/정치]
조선 말기의 애국지사(1833∼1906).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상소하여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이후 일본과의 통상조약과 단발령에 반대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항일의병운동 전개를 촉구하며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았으나, 순창에서 패하여 쓰시마
최인 / 崔麟 [정치·법제/정치]
1878~?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함흥 사람. 1904년 황실 유학생으로 도쿄부립제일중학에 입학, 일본유학생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었다. 1909년 메이지대학 법과 졸업, 천도교에 입교했다. 1919년 3.1운동때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
최인범 / 崔仁範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검정 중등체육』·『체육원리』·『체육강화자료선』 등을 저술한 학자.체육학자. 1919∼1979. 평안북도 용천 출생. 한평생을 교직에 근무하면서 학교 체육 및 사회 체육 발전에 힘썼다. 길림사도대학(吉林師道大學) 체육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교직에 투신, 목단강
최인호 / 崔仁浩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조선체육회 경기부장, 조선체육회 이사 등을 역임한 체육인. 1907∼? 경상북도 구미 출생. 대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체육전문대학을 졸업하였다. 1931년 조선체육협회가 경성운동장의 준공을 맞아 개최하게 된 제7회 조선신궁경기대회의 육상 100m 종목에서
최인희 / 崔寅熙 [문학/현대문학]
1926년∼1958년. 시인. 강원도 삼척 출생. 삼척보통학교, 대구 대륜중학교(大倫中學校), 1949년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다. 1950년『문예(文藝)』에 「낙조(落照)」‧「비 개인 저녁」등을 발표하여 문단에서 활동하다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최일명 / 崔日明 [역사/근대사]
1888-1976. 독립운동가. 평양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1920년에는 평양의 서성리교회에서 청년단을 조직하고 상해(上海)로부터 몰래 들어온 선우 혁(鮮于爀)과 함께 평안남도내에서 군자금을 거두어 상해로 전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