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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금보 / 琴輔 [종교·철학/유학]
1521(중종 16)∼1584(선조 17).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금원수,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장령 김영수의 딸이다. 이숙량·오수영과 더불어 삼절이라 불리었다. 저서로는『사서질의』·『심근강의』·『가선휘편』·『사례정변』·『사례기문』등이 있었으나 병화에
금석주 / 琴錫柱 [역사/근대사]
1857-1920. 의병장. 일명 종헌(鍾憲)·종응(鍾應)·석조(錫祚). 경상북도 봉화 출신.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경상북도와 충청남북도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896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봉화·예안·영주·순흥·풍기·안동의 의진과 공동작전을 펴
금성대군 / 錦城大君 [종교·철학/유학]
1426(세종 8)∼1457(세조 3). 조선 전기의 왕자. 아버지는 세종,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다. 1433년(세종 15) 금성대군에 봉해지고, 1437년 참찬 최사강의 딸과 혼인, 그 해 태조의 일곱 째 아들인 이방번의 후사로 출계하였다. 단종 복위를 계획하였
금영택 / 琴英澤 [종교·철학/유학]
1739년(영조 15)∼1820년(순조 20).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은 금일협, 모친은 호군 이시번의 딸이다. 부인은 조도경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 증광시 생원 3등 62위로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유학하였다.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금원김씨 / 錦園金氏 [문학/한문학]
1817년(순조 17)∼?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 어려서부터 병을 잘 앓아 몸이 허약하므로 그의 부모가 글을 배우도록 했는데, 글을 뛰어나게 잘해서 경사(經史)에 능통했고 고금의 문장을 섭렵하여 시문에 능했다. 평생 남자로 태어나지 못하였음을 한하면서 1830년(순조
금응훈 / 琴應壎 [종교·철학/유학]
1540(중종 35)∼1616(광해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훈도 금재, 어머니는 김효노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 유성룡·조목과 교우하였다. 1570년(선조 3) 사마시에 합격, 1594년 학행에 의하여 영의정 유성룡 등의 천거를 받아 종묘서부봉사에 제수되
기건 / 奇虔 [종교·철학/유학]
?∼1460(세조 6). 조선 전기의 문신. 고려 때 신돈의 일당인 기현의 후손이다. 학행으로 이름이 높아 세종 때에 포의로 발탁되어 지평에 제수되었다. 이어서 내직으로 옮겨 집의·형조참의·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448년(세종 30) 전라도관찰사 겸 전주부윤에 부임,
기대승 / 奇大升 [종교·철학/유학]
1527-1572. 조선시대의 성리학자. 1558년 과거 급제하여 사관이 되었다. 32세에 정지운, 이황과 <태극도설>을 논하고, 이황과 사칠논변을 통하여 사상적 체계를 완성시켰다. 정지운의 <천명도>는 호씨설에서 나왔고, 이황의 사칠론은 <주자어류>에 지나치게 의존
기르스 / H. K. Гирс [정치·법제/외교]
1820-1895. 러시아 외교관. 러시아 외무대신 기르스는 뿌쉬낀 귀족학교를 졸업하고 1838년에 외무부 아시아국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1851년에 몰다비야 주임 영사로 임명, 1856년에 이집트 총영사, 1858년에 발라히야와 몰다비야 총영사로 임명되었다. 18
기산도 / 奇山度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항일투사(1869-?). 박인호·이기 등과 함께 자강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에 힘썼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암살단을 조직했다. 이근택을 습격했으나 실패하여 도피했다. 이후 체포되었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기언정 / 奇彦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6∼?). 명종 때 유명한 성리학자인 기대승의 후예로 그 후광을 입어 1782년(정조 6)에는 당상관으로 특별히 초자되어 승정원동부승지가 되었으며, 성리학에 심취하여 관계서적을 조석으로 암송했으며, 이런 자세는 그의 조상인 기대승을 방불하게
기우만 / 奇宇萬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의병장(1846∼1916).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1906년 체포되어 감옥에서 복역했다. 석방된 후 1908년에 거사를 계획했으나, 고종이 퇴위당하자 해산하고 은둔생활을 했다. 저서에는《송사집》이 있다.
기의헌 / 奇義獻 [종교·철학/유학]
1587(선조 20)∼1653(효종 4). 조선 후기의 학자·의병. 기대승 종손, 아버지는 부사과로 이조참의에 추증된 기효분, 어머니는 함평이씨 이유회의 딸이다. 가정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절의와 기개가 뛰어났다. 안방준이 글을 지어 길재의 절의를 의심하자 선현들의
기정진 / 奇正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1798∼1879). 1831년에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했으며 1832년 강릉참봉이 주어졌고, 1835년에는 다시 현릉참봉이 주어졌으며, 1837년 천거돼 사옹원주부에 임명됐으나 모두 사의를 표했다. 그러나 시국에 민감해 폐단을 시정하고 위기를
기준 / 奇遵 [종교·철학/유학]
1492(성종 23)∼1521(중종 1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응교 기찬홍. 조광조의 문인이다. 1513년(중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급제해, 천문이습관, 검토관, 장령, 시강관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복재집』·『무인기문』·『덕
기형도 / 奇亨度 [문학/현대문학]
시인·신문기자. 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에서 태어났다. 1984년중앙일보사에 입사하고, 1985년 시 「안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2월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 수습 후 정치부로 배속되었다. 1986년 문화부로 자리를 옮기고 활발
길선주 / 吉善宙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기독교인(1869-1935). 1897년 기독교 교인이 되었고, 안창호 등과 함께 독립협회 평양지부를 조직했다. 전도활동과 교육사업에 매진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다. 평안남도 고창교회에서 설교 도중에 죽었다.
길재 / 吉再 [종교·철학/유학]
1353(공민왕 2)-1419(세종 1). 여말선초의 성리학자. 이색, 정몽주와 함께 삼은이라 불렸다. 1386년 과거급제 하였다. 그의 학풍은 정주학에 바탕을 두고 충효를 위주로 하였다. 이단배척과 실천을 강조하였다. 학통은 문인 김숙자에게 전수되고 김종직, 김굉필,
길진섭 / 吉鎭燮 [예술·체육/회화]
1907-미상. 양화가. 평양 출생.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길선주(吉善宙) 목사의 아들이다. 1932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민족사회의 서화협회전람회에 참가하였고, 1934년 이종우(李鍾禹)·장발(張勃)
김각 / 金覺 [종교·철학/유학]
1536(중종 31)∼1610(광해군 2).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진사 김언건, 어머니는 참봉 조이의 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해 여름에 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을 다수 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감사 김수가 그의 전공을 행재에 보고하여 사온서주부를 제수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