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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고영희 / 高永喜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대신·친일파(1849∼?). 갑오개혁에 참여하고, 독립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이완용 내각의 탁지부대신을 지낼 때는 고종의 양위에 적극 반대하였다. 경술국치 후 자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등을 지내는 등 일제 앞잡이가 되었다.
고예진 / 高禮鎭 [역사/근대사]
1875-1952.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수문(秀文), 호는 송천(松川). 전라북도 고창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형제인 용진(龍鎭)·석진(石鎭)이 최익현(崔益鉉)과 거사할 것을 계획하자 거기에 가담하였다. 1906년 4월 무성서
고용석 / 高用錫 [역사/근대사]
1866-1929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제주도 서귀포(西歸浦) 중문동(中文洞)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었다. 1918년 10월 15일 법정사(法井寺) 승려 김연일(金蓮日)과 강창규(姜昌奎)가 주도한 항일운동에 참가하였다. 김연일은 포교 활동을 하며 신도들에게 배일사
고용석 / 高龍錫 [역사/근대사]
1895-1950.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치현(穉賢)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출신지는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북이면(北二面) 모현리(募峴里)이다. 의병장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14세손이다. 타고난 성품이 명민하였으며, 항상 나라 잃은 설움에
고용주 / 高墉柱 [역사/근대사]
1865-1930. 일제강점기 유학자·교사. 자는 현중(玄仲), 호는 봉계(鳳溪)이며, 본관은 장택(長澤) 또는 장흥(長興)으로, 출신지는 전라남도 구례(求禮)이다. 소천 왕사찬과 매천(梅泉) 황현(黃玹)에게 사사하였다. 1903년(광무 7) 고종황제에게 시책(試策)
고용진 / 高龍鎭 [역사/근대사]
1850년(철종 1)∼1922년.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운서(雲瑞), 호는 송재(松齋), 본관은 장흥(長興),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다.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강회(講會)를 가장하고 의병을 일으키자, 포수 30여명을 이끌고 의병으로 들어갔다. 1912년
고웅주 / 高雄柱 [역사/근대사]
1923-19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강원도 정선군(旌善郡)이다. 춘천중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재학 중 동학생이던 한인학생들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8년 학교 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상록회(常綠會)가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회원 전
고원훈 / 高元勳 [역사/근대사]
1881-미상. 민족항일기의 정치인·체육인. 1881년 3월 경상북도 문경군 양면 신전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7월 일본의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하고, 1911년 8월 조선총독부의 경부(警部)로 채용되었고, 1913년 5월 보성전문학교 교수, 1922년에
고유 / 高裕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2∼1779). 1743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창녕현감·경상도사·안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지방관으로 있을 때 토지·소송 문제 등을 잘 처리하였고, 1796년에 청백리에 추천되었다.
고유섭 / 高裕燮 [예술·체육/회화]
항일기의 미술사학자(1905∼1944). 호는 우현(又玄). 경성제국대학 미학연구실의 조수로 근무하면서 고대 미술품 조사와 연구에 힘썼다.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해 박물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우리 미술사 연구에 주력했다. 주요 논문은 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