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지명 > 고지명 총 60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지명 > 고지명
간성 / 杆城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고성 지역의 옛 지명. 원래 고구려의 수성군(䢘城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수성군(守城郡)으로 고쳤다. 995년(성종 14) 삭방도(朔方道)의 간성군이 되었고, 그 뒤 1018년(현종 9) 동계(東界)에 속하는 간성현이 되고, 속현으로 열산현(烈山縣)을 두었다
감음 / 感陰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거창 지역의 옛 지명. 신라 때 남내현(南內縣)이었으나 경덕왕이 여선현(餘善縣)으로 고쳐 거창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감음현(感陰縣)으로 바꾸었고, 1161년(의종 15) 정서(鄭敍)의 처 임씨(任氏)를 무고한 ‘자화(子和)의 무고사건’이
감천 / 甘泉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예천 지역의 옛 지명. 『삼국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신라 때의 명칭이 미상이나, 『대동지지』에 신라 때 명칭을 고쳤고 예천군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018년(현종 9) 안동부에 예속되었고,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따랐다가 폐현되었
강계군 / 江界郡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동쪽은 낭림산맥을 경계로 함경남도의 장진군, 서쪽은 위원군과 초산군, 남쪽은 희천군, 북쪽은 자성군과 후창군, 그리고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의 만주 지방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04′∼127°00′, 북위 40°15′∼41°22′
강령 / 康翎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옹진과 인천광역시 옹진 지역의 옛 지명. 영강현(永康縣)과 백령현(白翎縣)이 합쳐져 이루어졌다. 영강현은 고구려 때 부진이(付珍伊)였으며, 고려 초에 영강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 옹진현(甕津縣)에 속하였으나 1106년(예종 1) 감무(監務)를 두어 가
강원도 / 江原道 [지리/자연지리]
지명. 고려 때에 영동은 삭방도, 강릉도 또는 강릉삭방도라 하고 영서는 춘주도, 동주도 또는 교주도라 하던 것을 1389년(공양왕 1)에 영동·영서를 합쳐서 강릉교주도라고 합칭하였으나, 태조 3년 6월에 강릉교주도를 강원도로 개칭하여 감사 본영을 원주에 두었다. 17
강음 / 江陰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금천 지역의 옛 지명. 당시 강음현은 동쪽과 북쪽은 평산, 서쪽은 배천, 남쪽은 개성과 접하고 있었다. 본래 고구려의 굴압현(屈押縣, 일명 江西)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강음으로 바뀌어 송악군(松嶽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개성현의 속현이 되
개령 / 開寧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옛 지명. 1413년(태종 13) 비로소 현감(縣監)을 두어 개령현이 되었다. 1601년(선조 34) 역적 길운절(吉雲節) 사건으로 한때 김산군(金山郡)에 합병시켰다가 5년 뒤 다시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에 이속시켰다. 1609년(광해군 1) 다시
개차산 / 皆次山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안성 지역의 옛 지명.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백제 때의 고을이라고 되어 있다. 757년(경덕왕 16) 통일신라에서 지방관제를 개혁하여 셋 혹은 넉 자로 된 고을이름을 두 자 지명으로 고칠 때 개차산군을 줄여서 개산군(介山郡)으로 하였다.
거령 / 居寧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임실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거사물현(居斯勿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청웅현(靑雄縣)이라 고치고 임실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 거령(居寧, 혹은 巨寧)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남원도호부에 예속시켰다. 별칭으로 읍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