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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 고창희 / 高昌熙 [역사/근대사]

    1887-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시(平壤市)이다.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1919년 백기환(白基煥)·정찬도(鄭燦道) 등과 결의를 하고 만주(滿洲) 서간도(西間島)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대한독립

  • 고채주 / 高采柱 [역사/근대사]

    1861-1920년.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통영 출신. 일명 석주(錫柱). 1901년부터 1909년까지 미주(美洲)에서 동포의 단결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귀국하였으며 통영 지방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01년 서양의 문물을 배우고 익혀서 우리민족을 깨우치기로 결심

  • 고태영 / 高泰英 [역사/근대사]

    1891-1941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오조리(吾照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5월 성산포에서 면민씨름 대회를 개최하였을 때, 씨름구경을 하던 일본어선단 선원 2백여 명과 지방민과 격투가 벌어져, 김명선(金明善

  • 고평 / 高平 [역사/근대사]

    188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본적은 전라북도 정읍(井邑)이다. 1918년 2월 중국 국자가(局子街) 하장리(下場里) 연길(延吉) 도윤공서(道尹公署) 외교과원 박동원(朴東轅)의 집에서 이홍준(李弘俊)·이성근(李聖根)·김영학(金永學)

  • 고형림 / 高亨林 [역사/근대사]

    1907년∼1975년.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예천 출신.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대판(大阪)·나고야(名古屋) 등지에서 노동에 종사하다가 사진기술을 배워 귀국한 뒤 한때 예천군 농회(農會)지도원으로 있었다. 생활난으로 1939년 8월 만주 안동성(安東省)으로 이주,

  • 고휴규 / 高烋圭 [역사/근대사]

    1884-1954.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수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제주의 민족주의 계열의 성산청년회가 주최한 성산면 체육대회에서 한국인 선원과 일본인 선원 등 2백여 명과 벌어진 싸움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고휴규는

  • 공진원 / 公震遠 [역사/근대사]

    1907-1943. 독립운동가. 일명 고운기(高雲起). 호는 학은(鶴隱). 창준(昌俊)의 아들이다. 중국 하얼빈(哈爾濱)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북만주로 가서 청년운동과 교육사업에 주력하였다. 1930년 7월에 결성된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고, 이 당에서 조직한 한국독립

  • 공창준 / 公昌準 [역사/근대사]

    1879-193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포(金浦)이고, 본적은 함경남도 문천(文川)이며, 출신지도 함경남도 문천이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문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 후 홍범도(洪範

  • 곽경렬 / 郭京烈 [역사/근대사]

    1901-1968. 독립운동가. 전라북도 김제 출신. 1915년 항일비밀결사인 광복단에 입단하여 한훈(韓焄)·유장렬(柳章烈) 등과 함께 박곡(朴谷)·벌교(筏橋) 등지의 친일파 부호를 숙청하였으며, 오성(烏城)의 일본헌병분견대를 습격하는 등 많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19

  • 곽낙삼 / 郭洛三 [역사/근대사]

    1864-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조국을 위해 의병 활동에

  • 곽낙원 / 郭樂園 [역사/근대사]

    1859-193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재령군(載寧郡)이다. 남편은 김순영(金淳永)이다.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운동가들과 항일단체들을 후원하였다. 1911년 7월 22일 아들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신민회(新民會) 활동으로 인하여 징역

  • 곽상훈 / 郭尙勳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96-1980). 호는 삼연(三然). 1920년대 후반, 항일단체인 신간회에 들어가 검찰위원으로 활약했으며 관동대지진 때는 한국인 희생자의 명단을 입수, 한국인 학살사건의 진상기록을 수집해 그로 인해 상해로 망명생활을 했다. 귀국 후 일

  • 곽재구 / 郭在九 [역사/근대사]

    1889-1932년. 의병. 전라남도 나주 출신. 영암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심남일(沈南一)의진의 부장(部將)인 권택(權澤)의 부하로 호남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8년 12월 권성화(權聖化) 등과 그들의 의병활동을 일본관헌에게 밀고한 자를 나주군

  • 곽재기 / 郭在驥 [역사/근대사]

    1893-1952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경(敬). 충청북도 청주 출신. 지엽(芝燁)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귀향하여 청주 청남학교 교사로 있었다. 1909년 청소년으로 조직한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의 당원으로 지하공작을 진행하였

  • 곽중규 / 郭重奎 [역사/근대사]

    1891-1950. 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옥천 출신. 1919년 3월 고향인 옥천군 이원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대전형무소에서 3개월간 복역하였다. 1921년 9월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1922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비서로 취임하였

  • 곽한일 / 郭漢一 [역사/근대사]

    1869-1936년. 의병장. 자는 원우(元佑), 호는 장암(壯菴). 충청남도 아산 출신. 1896년 전기 의병항쟁기에 안성방면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일본군과 진위대(鎭衛隊)가 합세하여 공격해옴으로써 아산·예산·청양 등지로 잠행하면서 동지를 규합하는 데 힘썼다. 19

  • 구성문 / 具成文 [역사/근대사]

    1890-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가담한 후, 강연상(姜鍊翔)·김동준(金東俊)·김찬(金燦)·서병호(徐丙鎬)·윤덕보(尹德甫)

  • 구수서 / 具守書 [역사/근대사]

    1894-194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창원(昌原)이다.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鎭田面: 현 마산시 진전면) 봉암리(鳳岩里)의 구장(區長)으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인근 진동면(鎭東面)에서 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변상태(卞

  • 구순암 / 具順岩 [역사/근대사]

    1907-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일본 이와떼현[岩手縣] 야하기촌[矢作村]이다. 1930년 초 일본노동조합전국연합회 젠꼬오[全協]에 가입한 후 각지에서 노동쟁의가 일어날 때마다 참여하였다. 1932년 이와떼현 야하기촌의

  • 구여순 / 具汝淳 [역사/근대사]

    1896-1946. 독립운동가. 호는 일정(一丁). 경상남도 의령 출신. 진주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2월 28일 동생 은득(銀得)의 요청으로 3월 3일 상경하여 3·1운동에 참가하고 곧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2일 고향으로 돌아와, 동지 최정학(崔正

  • 구연흠 / 具然欽 [역사/근대사]

    1883-1937년.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독립운동가. 출신지는 경기도 양주(楊州)이다. 부친은 철원군수를 지냈다. 1922년 이후 무산자동맹회와 신사상연구회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6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

  • 국영환 / 鞠榮煥 [역사/근대사]

    1871-193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영화(永化), 호는 곤암(坤庵)이며,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화산면(華山面) 운곡리(雲谷里) 봉산에서 출생하였다. 13세 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 당시 어장(御將) 조영하(趙寧夏)에게서

  • 국하현 / 鞠夏鉉 [역사/근대사]

    1868-1919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성모(聖模), 호는 송은(松隱)이며,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화산면(華山面) 우월리(牛月里) 출신이다. 부친은 국치술(鞠致述)이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익산(益山)에 머

  • 권기옥 / 權基玉 [역사/근대사]

    1903-1988. 독립운동가. 평양 출신. 독립운동가 이상정(李相定)의 부인이다. 1919년 평양 숭의학교(崇義學校) 재학시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3주일 동안 구류되었다. 그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락원인 임득삼(林得三)·김정직(金鼎稷)·김순일(金淳一)

  • 권기일 / 權奇鎰 [역사/근대사]

    1886-1920.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 본명은 혁린(赫麟). 경상북도 안동 출신. 1912년 만주 봉천성(奉天省)으로 망명하여 이시영(李始榮)·김좌진(金佐鎭) 등 항일지도자들과 접촉하면서 독립군 양성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다. 1919년 3월 부민단(扶民團)·

  • 권도용 / 權道溶 [역사/근대사]

    1878-1959. 일제 강점기 유학자·독립운동가·교육자. 자는 호중(浩中)이고, 호는 추범(秋帆)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출신지는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이다. 부친 권재모(權在模)와 모친 진양하씨(晉陽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곽종석(郭鍾錫

  • 권동진 / 權東鎭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61-1947). 호는 애당(愛堂)·우당(憂堂)·실암(實菴). 거문도첨사 재직시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에서 사귄 손병의의 영향으로 천도교에 입교해 민족대표로 3.1운동을 이끌었다. 《개벽》의 편집에 참여

  • 권병덕 / 權秉悳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천도교인(1867-1944). 호는 청암(淸菴)·정암(貞菴)·우운(又雲). 동학교도가 되어 1894년(고종 31)에 손병희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다. 1908년(융희 2)에 천도교에 입교했다. 3·1운동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했다. 196

  • 권상익 / 權相翊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63-1935). 을사조약에 격분하여 만국공관(萬國公館)에 보낼 호소문을 작성하였고, 3·1운동 당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운동에 참가하였다. 1925년 독립군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을 제공하고 적극 지원하였다. 문집으로 《성재집》 2

  • 권상중 / 權相中 [역사/근대사]

    1882-1929년.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안동. 본명은 상중(尙中), 아명은 석출(石出). 자는 윤집(閏集). 경상북도 청송 출신. 아버지는 복규(福奎),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체결로 인하여 일본에 의한 국권침탈이 자행되자 의병장 김소라

  • 권석도 / 權錫燾 [역사/근대사]

    1880-1946년. 한말의 의병장·독립운동가. 일명 윤일이(尹一二) 또는 권명구(權命九). 경상남도 함양 출신. 군대해산 직후인 1907년 8월에 기우만(奇宇萬)·고광순(高光洵)·김동신(金東臣) 등이 회합하여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동지를 규합할 때 김동신의

  • 금기철 / 琴基哲 [역사/근대사]

    1881-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장·독립운동가. 출신지는 경상북도 봉화(奉化)이다.1907년(융희 1) 울진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한상설·김현국 등과 함께 일본군 구성(構城) 수비대를 공격하여 전투를 벌였다. 이후 군사를 거느리고 삼척(三陟)·갈전(葛田) 등

  • 금석주 / 琴錫柱 [역사/근대사]

    1857-1920. 의병장. 일명 종헌(鍾憲)·종응(鍾應)·석조(錫祚). 경상북도 봉화 출신.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경상북도와 충청남북도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896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봉화·예안·영주·순흥·풍기·안동의 의진과 공동작전을 펴

  • 기산도 / 奇山度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항일투사(1869-?). 박인호·이기 등과 함께 자강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에 힘썼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암살단을 조직했다. 이근택을 습격했으나 실패하여 도피했다. 이후 체포되었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김갑 / 金甲 [역사/근대사]

    1888-미상. 독립운동가. 국내에서는 진원(晋源)이라고 불렀고, 중국망명 후 갑(甲)이라 하였다. 부산 출신. 부산 동명학교(東明學校: 동래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부기학교를 다니다가 3·1운동을 맞아 함양·산청 등지의 항일투쟁 연락책임을 띠고 활동하

  • 김갑수 / 金甲洙 [역사/근대사]

    1894-1938.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운동가.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한산면(韓山面) 출신이다. 부농(富農)이었던 김영성(金永聲)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한 이후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에서 위원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귀국하여 1927년 전라북도 완주군(完州

  • 김갑진 / 金甲辰 [역사/근대사]

    미상-193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함경북도 성진(城津)이다. 신간회(新幹會)와 성진청년동맹(城津靑年同盟)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신간회와 성진청년동맹이 해체된 후, 두 조직을 기반으로 한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을 결성한 후,

  • 김경선 / 金慶先 [역사/근대사]

    1862-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 서부(西部; 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이다. 1907년(융희 1)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경기도 포천(抱川)에 위치한

  • 김경식 / 金景軾 [역사/근대사]

    1870-1940.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인·항일운동가. 한학(漢學)을 공부하다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증산교가 흩어진 이후 그 신도였던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세운 증산교 계열의 보천교(普天敎)에 입교(入敎)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는 역시

  • 김경천 / 金景天 [역사/근대사]

    1888-193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소안면(所安面)이다. 1913년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리에 김사횡(金仕宖)이 설립한 중화학원(中和學院)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항일의식을 배양시켰다. 1919년

  • 김경태 / 金敬泰 [역사/근대사]

    187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했으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으나 일본경찰에 붙잡혀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김경희 / 金慶熙 [역사/근대사]

    1896-195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장환(金章煥)은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을 하다가 쫓기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6일에 제주에 도착하였다. 그는 백부 김시우(金時宇

  • 김공실 / 金貢實 [역사/근대사]

    1871-1930.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의 의병. 1907년(융희 1) 9월 이석용(李錫庸)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그는 동지 20명을 규합하여 이석용 의병 대장의 진영에 입대하였다. 도로부장(道路副將)으로 임명되어 활약하면서, 전라북도 장수(長水), 진안(鎭安)

  • 김관묵 / 金寬默 [역사/근대사]

    1894-196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일선(一善)이고, 본적은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가조면(加祚面)이다. 1919년 3월 20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場基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일본 헌병들의 무력진압에 의해 김병직(金秉直)·어명

  • 김관보 / 金官寶 [역사/근대사]

    1882-192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석산(石山).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으며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입대한 뒤 김좌진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일본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꾸준한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순국하였다.

  • 김관성 / 金觀聲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애국계몽가·사회사업가. 일명 관성(觀星). 평안남도 평양 출신. 3·1운동 뒤 항일독립투쟁을 목적으로 장명환(張明煥)·이춘산(李春山) 등과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이때 그들은 간도 지방의 교민단체인 한족회(韓族會)의 비활동성에 불만을 품은 현익

  • 김관오 / 金冠五 [역사/근대사]

    1901-1965. 독립운동가. 호는 우당(愚堂). 서울 출신. 1919년 보성중학교 재학중에 3·1운동에 참가하여 선전문을 비밀리에 배부하다가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경성지방검사국으로 이송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뒤 평강에 있는 친척집에 피신

  • 김관용 / 金寬龍 [역사/근대사]

    1900-197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승려. 본적은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해미면(海美面)이다.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면에 위치한 해미공립보통학교(海美公立普通學校)에서 수학하였다. 학생으로 재학 중 1919년 3월 24일 이계성(李啓聖)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 김광서 / 金光瑞 [역사/근대사]

    1883-미상. 독립군 지휘관. 본관은 시흥. 아명은 현충(顯忠), 별명은 경천(擎天). 함경북도 북청 출신. 대한제국의 포병 부령(副領)이며, 군기창장(軍器廠長)을 역임한 정우(鼎禹)의 아들이다. 1911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23기졸업생으로 기병장교로 동경 제1사단

  • 김광용 / 金匡溶 [역사/근대사]

    1908-197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본양면(本良面)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926년 11월 3일, 국순엽(鞠淳葉)·김창주(金昌柱)·김한필(金漢苾)·문승수(文升洙)·박인생(朴仁生)·안종익(安鍾翊

  • 김광욱 / 金光郁 [역사/근대사]

    미상-19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이다. 1919년 3월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반석면(班石面) 반육리(班六里)에 소재한 반석교회(盤石敎會)의 조진탁(曺振鐸) 장로가 시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일본 경찰에 의해 사전 검거되어 실패하였

  • 김광제 / 金光濟 [역사/근대사]

    1866-미상. 민족운동가. 충청남도 보령 출신. 1907년 대구에서 출판사인 광문사(廣文社)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부사장 서상돈(徐相敦)과 함께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 國債一千三百萬과報償趣旨書〉라는 격문을 전국에 발송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제의하였다. 그 요지는 대한국

  • 김광진 / 金光振 [역사/근대사]

    1889(고종 26)∼1964년. 독립운동가. 가명 광해(廣海). 평안북도 의주 출신. 3·1운동 때 의주군 광평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한 뒤 조선총독부 경찰의 눈을 피하여 오동진(吳東振) 등과 남만주로 망명하여 청년단조직에 헌신하였다. 1920년 9월 18일에 미국

  • 김교락 / 金敎洛 [역사/근대사]

    1882-1954.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함평 출신.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있던 중 1917년 6월 정동근(鄭東根)·양재홍(梁在鴻)·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함께 전라남도의 나주·함평·화순 등지에서 자산가를 대상으로 독립운동에

  • 김교선 / 金敎善 [역사/근대사]

    1892-196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시(天安市) 수신면(修身面)이다. 1919년 3월에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홍일선(洪鎰善)과 함께 충청남도 천안시 갈전면(葛田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시행하기로 계획하였다. 3

  • 김교영 / 金敎永 [역사/근대사]

    1858-192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현 경기도 하남시) 동부면(東部面)이다.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望月里: 현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의 구장(區長)으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 김교일 / 金敎逸 [역사/근대사]

    1884-1940.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자는 평중(平仲)이고, 호는 영암(永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덕치면(德峙面)에서 태어났다. 계림군(鷄林君) 김곤(金梱)의 18세손이다. 동학 접주 김학원(金學遠)의 3남으로 태어났다.

  • 김교창 / 金敎昌 [역사/근대사]

    1889-1959. 독립운동가. 경기도 강화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홍면(洪) 등이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의 면사무소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송산면 뒷산

  • 김교필 / 金敎弼 [역사/근대사]

    1867-194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만산(萬山)이고, 호는 화암(化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운암면(雲岩面) 화암리(化菴里) 출신이다. 아버지는 김학원(金學遠)이며 김덕원(金德遠)으로도 불리었다. 1894년(고종 31) 갑

  • 김교헌 / 金敎獻 [역사/근대사]

    1868-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대종교인.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보화(普和). 1885년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참의·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대중계몽운동을 벌였다. 나철(羅喆)의 뒤를 이어 대종교의 제2대 교주에 취임

  • 김교훈 / 金敎勳 [역사/근대사]

    1880-1934.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학로(金學老)·김훈(金勳)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강원도와 충청남도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군대에게 체포되

  • 김구 / 金九 [역사/근대사]

    1876-194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1919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다. 1939년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고, 이듬해 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지휘하였다. 1945년 11월 환국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쳤다. 1948년 남한의

  • 김구영 / 金龜永 [역사/근대사]

    1884-1931.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낙서(洛瑞), 호는 정사(睛沙)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전라북도 진안(鎭安) 출신이다. 증조부는 김사성(金思聲)이고, 조부는 김석기(金奭基)이다. 부친은 김종협(金鍾協)이다. 외조부는 천안전씨(天安全氏) 전명석(全

  • 김국원 / 金國元 [역사/근대사]

    1890-1937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성덕(性德), 호는 송암(松庵)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전라남도 순천(順天) 승주군(昇州郡) 별량면(別良面)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순신(李舜臣) 막하에서 활약한 김대인(金大仁)

  • 김귀동 / 金貴東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마산(馬山)이다. 1924년 10월 마산노동동우회 집행위원을 맡아서, 12월 마산기자단 결성 때 조선일보 마산지국 기자로서 참가하였다. 1925년 1월 마산독서회 창립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간

  • 김규철 / 金奎哲 [역사/근대사]

    1881-1929.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규철(奎喆). 호는 비장(飛將). 충청북도 단양 출신. 1907년 군대해산 뒤 단양·죽령·청풍·제천·영주·예천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죽령지역에서 4백여명을 인솔하고 다섯 차례나 치열

  • 김기성 / 金基聲 [역사/근대사]

    1900-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계성(金啓成)·김선경(金先敬)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시(安城市)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시의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

  • 김기용 / 金基容 [역사/근대사]

    미상-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이다.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고향에 거주하면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독립군(獨立軍)에게 정보를 제공하였다. 1922년 1월 독립군을 위한 첩보 활

  • 김기용 / 金基用 [역사/근대사]

    1883(고종 20)-1938. 독립운동가. 일명 명숙(明淑)·사보(士寶). 경상북도 영천 출신. 1928년 1월경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진 주동자 장진홍(張鎭弘)과 만나 영천경찰서 및 영천의 부호 이인석(李仁錫)에게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투척연습을 하며

  • 김기주 / 金基周 [역사/근대사]

    1923-미상.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40년대에 일본 군대에 강제로 징집된 후 중국 하남성 형문현(荊門縣)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치되었으나, 조국을 위해 탈출을 감행하였다. 탈출 후 중국 중앙군으로 들어가 중앙군 유격대에 배속되

  • 김기추 / 金基秋 [종교·철학/불교]

    1908-1985. 독립운동가·불교지도자. 본관은 김해. 호는 백봉(白峯). 부산 출생. 10세 때까지 제주도에서 자라다가 11세 때 부산으로 이주, 그곳에서 영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제이상업학교에 진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조선사를 교과목에 삽입시킬 것과 일본명으로

  • 김기한 / 金起漢 [역사/근대사]

    188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직재(直齋). 일제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며 만주로 망명한 뒤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국내에 잠입하여 중앙본부를 결성하고 군자금을 확보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었고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 김기헌 / 金基憲 [역사/근대사]

    189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고주(金高洲)이다. 본적은 함경남도 고원군(高原郡)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남촌동(南村洞) 소재 남감리교회 담임목사 정춘수(鄭春洙)는 3월 1일 만세운동을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정보 확인을 위

  • 김기형 / 金基瀅 [역사/근대사]

    1887-194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해악(海岳). 만주에서 독립운동과 육영사업을 벌이다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군자금을 모으는데 노력하였다. 병인의용대·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고 한국광복군 창립에 참여하였다.

  • 김기휴 / 金起休 [역사/근대사]

    1895-미상.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지금의 제주도 서귀포시(西歸浦市) 성산읍(城山邑) 신풍리(新豐里)에서 출생하여 고성리(古城里)로 이주한 뒤 농사를 지었다. 평소 민족주의(民族主義) 노선인 성산청년회가 주관한 성산면 체육대회의 씨름경기 중 한국인 선원과 일본인

  • 김낙두 / 金洛斗 [역사/근대사]

    미상-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하여 곽문(郭文)·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김형식(金衡植)·남정섭(南廷燮)·양규열(梁圭烈)

  • 김낙서 / 金洛西 [역사/근대사]

    1890-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경원군(慶源郡)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만주(滿洲) 일대에서도 항일투쟁을 위해 김청봉·김현규·이범윤·진학신·최우익 등을 중심으로 한 의군단(義軍團)이 조직되었다. 이때 만주에서 의

  • 김낙선 / 金樂先 [역사/근대사]

    1881(고종 18)-1925.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낙진(洛振). 전라남도 부안 출신. 1909년 의병장 이용서(李用西)의 부대에 가담하여 총기 15정 등으로 무장한 의병 30여명과 함께 고부·부안·태인 등지를 근거로 활동하였다. 같은해 3월 일본군 기병대

  • 김낙용 / 金洛用 [역사/근대사]

    1860-191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맹암(孟巖). 천도교에 입교한 뒤 각지를 돌아다니며 교리를 전파하였다. 초산(楚山)에서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신의주감옥에서 옥사하였다.

  • 김낙현 / 金洛鉉 [역사/근대사]

    1902(광무 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군·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우스리스크 얀치헤 크라브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러시아 니꼴라예프스크이다. 1906년(광무 10) 부모를 따라 아무르 강변의 니꼴라예프스크로 거주지를 옮겨 간 후 소학

  • 김난섭 / 金蘭燮 [역사/근대사]

    1895(고종 32)-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황해도 은률(殷栗). 1920년 중국 간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친일파와 일본 고위관리 암살단인 이명서(李明瑞) 일행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

  • 김남수 / 金南洙 [역사/근대사]

    1899(광무 3)-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호는 학산(鶴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견지동(堅志洞)이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

  • 김내범 / 金迺範 [종교·철학/개신교]

    1869(고종 6)-미상. 장로교 목사·독립운동가. 평안남도 평원(平原) 출생. 1907년 석암교회(石巖敎會)를 설립하는 등 강성엽(康成燁)과 더불어 평원군일대의 개척교인이었으며 1913년에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목사안수를 받은 뒤 만주 간도지역의 전도사업

  • 김대지 / 金大池 [역사/근대사]

    1891(고종 28)-1942. 독립운동가. 1917년 만주의 길림·봉천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 조직하려다 발각, 1918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4개월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그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 김덕목 / 金德穆 [역사/근대사]

    1913-1977.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 평안남도 용강 출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운영하던 인성소학교(仁成小學校) 및 상해 육청중학(育靑中學)을 졸업하였다. 그뒤 흥사단 단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애국비밀단체인 동방구락부 간부로 중국학생항일구국회에 참가하여 항일의식

  • 김덕영 / 金德永 [역사/근대사]

    1887-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상주(尙州)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황해도 재령(載寧)이다. 중국 상하이에 소재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자금 후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임시군사준비단(臨時軍事準備團)에 가입하였다. 이후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 김덕윤 / 金德潤 [역사/근대사]

    1919-200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평양시(平壤市)이다. 평양의 숭인(崇仁) 상업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6월 동학생 박윤옥(朴潤玉)·연광용(延光榕) 등과 함께 결의를 하고 항일결사단체 일맥회(一麥會)를 결성하였다. 이 모임을 통해 농

  • 김덕제 / 金德濟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한말의 의병장. 1907년 8월 군대해산 당시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정위로 8월 1일 서울 양시위대 항전의 소식을 전해 들은 진위대의 애국병사들은 봉기하려 하였으나 대대장인 참령 홍유형(洪裕馨)의 무마로 일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홍유형이 상경하자 특무정

  • 김덕진 / 金德鎭 [역사/근대사]

    1864-1947. 항일기의 의병. 자는 경명(景明). 호는 낙계(樂溪). 민종식의 부대가 열세에 처하였을 때, 여러 의병들과 함께 재기를 도모하였다. 이때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공주경찰서에 투옥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석방되었다. 사후, 1963년에 대통

  • 김덕현 / 金德賢 [역사/근대사]

    1880(고종 17)-1920.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회령 출신. 1910년 국권을 일본에 의해 빼앗기자 북만주 길림성 화룡현(吉林省和龍縣)으로 망명하여, 단군의 건국이념과 배일사상을 가르칠 목적으로 학성학교(學成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있으면서, 동포 자녀들에게 민

  • 김도곤 / 金道坤 [역사/근대사]

    1890-194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가옥(金可玉)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청도(淸道)이다. 1919년 5월 7일 경상북도 에서 일본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한 이종현을 보고 군중 300여 명을 모아 일본인 3명을 구타하는 등의 항일 운동을 전개

  • 김도규 / 金道珪 [역사/근대사]

    1885(고종 22)-1967.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 자는 인언(仁彦). 전라남도 보성 출신. 아버지는 형국(炯國)이다. 젊었을 때 병서를 즐겨 읽고 진을 치는 법을 익혔다. 1908년 2월 안규홍(安圭洪)이 보성 동소산(桐巢山)에서 의거하자, 그 의병진에

  • 김도숙 / 金道淑 [역사/근대사]

    1872(고종 9)-1943. 한말의 의병. 별명은 제헌(濟憲). 전라남도 나주 출신. 1907년 11월 의병장 심남일(沈南一)이 의병을 일으키자 휘하에 들어가 도통장(都統將)이 되었다. 1908년 전라남도 강진 오치동전투, 남평 장담원전투, 해남 성내전투 등에 참여하

  • 김도원 / 金道源 [역사/근대사]

    1895-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무장독립단체인 대한독립보합단(大韓獨立普合團)에 들어간 후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23년 집행되었다.

  • 김도태 / 金道泰 [역사/근대사]

    1891-1956.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졸업하고 명신중학교(明新中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성여자상업학교의 교장과 조선지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김도현 / 金道賢 [역사/근대사]

    1893-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장연(長淵)이다. 1919년 장규섭(長奎燮) 등이 결성한 비밀 결사단체 대한적십자사청년단(大韓赤十字社靑年團)에 가담하였다. 이때 권총을 구입하여 일본 경찰 및 친일인사들을 처단하고, 임시 정부가 발행한 독립공채(

  • 김도현 / 金道鉉 [역사/근대사]

    1852(철종 3)-1914. 조선 후기의 의병장. 일제의 침략 의도가 드러나자 의병을 모아 함창·태봉·삼척 등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에도 의병을 일으켰으나 결국 영해의 관어대(觀魚臺)에서 투신하였다. 저서로 <벽산선생창의전말>이 있다.

  • 김동삼 / 金東三 [역사/근대사]

    1878-193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일송(一松). 1913년 여준·이상룡 등과 함께 부민단을 조직했으며, 1918년 지린성 왕칭현에서 서일·여준·유동열·김좌진 등 39명이 민족대표로 서명한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1927년 김좌진·이청천 등과 함께

  • 김동수 / 金東洙 [역사/근대사]

    1916-1982.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광복군 제5지대 간부로 산시성 타이항산에서 적 후방공작을 전개하였다. 충칭에서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장에 취임하여 활동하였다. 사단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국민장이 수여되었다.

  • 김동식 / 金東植 [역사/근대사]

    1883-1945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중화 출신. 천도교인으로 1919년 상원(祥原) 지방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1일 천도교 중화교구의 전도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만세운동계획을 세웠다. 3월 2일에 상원교구 앞에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한 수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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