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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문인·학자
구상 / 具常 [문학/현대문학]
시인. 본적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789번지이나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출생했다. 1923년 아버지의 교육사업을 위해 함경남도 문천군 덕원리(원산시 근교)로 이주를 했다. 1938년원산 덕원 성베네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 중등과를 수료했고, 1941년일본대학 전
국동준 / 鞠東俊 [종교·철학/유학]
1887-1937.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자정(子正)이고, 호는 손재(遜齋)이다.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화산면(華山面) 운곡리(雲谷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문웅(鞠文雄)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
권덕규 / 權悳奎 [언어/언어·문자]
항일기의 국어학자(1890-1950). 호는 애류(崖溜).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창립에 참여하였고 조선어학회의 《조선어큰사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원안을 작성하였다. 저서로는 《조선어문경위 朝鮮語文經緯, 《조선유기 朝鮮留記》 ,《을지문덕 乙支
권응인 / 權應仁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문인. 퇴계(退溪)이황(李滉)의 제자로 시문에 능하였다. 권응인은 서류 출신인 탓에 서얼금고(서얼 출신은 벼슬에 재한을 두는 것)에 얽혀 벼슬은 겨우 한리학관(漢吏學官)에 머물고 말았다. 당대의 명문장가이다. 권응인은 송대의 시풍이 유행하던 당시의 문단에
권정선 / 權靖善 [교육/교육]
1848(헌종 14)∼? 국어학자. 조선 말기 사람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고, 만년에는 국어학연구에 힘써, 1906년『정음종훈(正音宗訓)』과 『음경(音經)』을 저술하였다. 특히, 『음경』은 그 저작목적이 문자사용의 혼란을 막고 누구나 바르게 배울 수 있는 기준을
권필 / 權韠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시인. 승지 권기(權祺)의 손자이며, 권벽(權擘)의 다섯째아들이다. 정철(鄭澈)의 문인으로,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은 채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술로 낙을 삼아, 부인이 금주를 권하니 시 「관금독작(觀禁獨酌)」을 지었다. 젊었을
금원김씨 / 錦園金氏 [문학/한문학]
1817년(순조 17)∼?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 어려서부터 병을 잘 앓아 몸이 허약하므로 그의 부모가 글을 배우도록 했는데, 글을 뛰어나게 잘해서 경사(經史)에 능통했고 고금의 문장을 섭렵하여 시문에 능했다. 평생 남자로 태어나지 못하였음을 한하면서 1830년(순조
김구주 / 金龜柱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의 관리(1740∼1786).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오빠이다. 1772년 공조참판으로 있을 때 탕평정책을 위협한다는 명분으로 정조의 외가 인물이었던 홍봉한(洪鳳漢)을 모함하였다. 정조 즉위 후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사도세자의 죽음과도 관련이
김극일 / 金克一 [역사/조선시대사]
1522년(중종 17)∼1585년(선조 18). 문신·학자.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藥峰). 본관은 의성이다. 1546년(명종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교서관정자에 임명되었다. 이후 승문원정자·저작·박사·승정원주서·형조좌랑·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저
김기진 / 金基鎭 [언론·출판/언론·방송]
1903-1985. 일제 강점기 문인. 1922년부터 토월회 창립 동인으로 연극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1923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등단한 뒤 문학동인지 《백조》에 가담하였다. 1924년부터 매일신보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적 문학 활동을 표방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