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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종교·철학
박기수 / 朴綺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4∼1845). 할아버지는 좌원, 아버지는 종신, 어머니는 최수일 딸이다. 1806년(순조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사헌,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광주부유수가 되었으나 경기암행어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박길진 / 朴吉眞 [종교·철학/원불교]
현대의 원불교인·교육자(1915∼1986).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를 졸업, 1966년 동국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1972년 대만문화학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 1981년 일본 불교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42년부터 원불교에 봉직하기 시작하여 교단발전
박난영 / 朴蘭英 [종교·철학/유학]
?∼1636(인조 14). 조선 후기의 무신. 선조 때 면천군수·중군 등을 거쳐, 1619년(광해군 11) 강홍립을 따라 후금 정벌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길잡이로 함께 들어왔다가 석방된 뒤, 회답관·선위사·선유사·추신사·
박대관 / 朴大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의병장(1756년(영조 32)~미상). 평안도 철산에 거주하던 진사로서,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반란군 진압에 일조하고자 하였다. 관군과 연합하여 반란군을 진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량미를 공급하여 난을 진압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박대완 / 朴大完 [종교·철학/원불교]
1885∼1959. 원불교의 교무. 전라남도 승주 출신.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인천통감부 직원·농장지배인 등으로 생활하다가 32세 때부터 만주·중국·러시아로 전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소태산을 만나 전
박도욱 / 朴道郁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관료(1681∼?). 박성서의 아들이다. 1702년(숙종 28)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했다. 이후 1728년(영조 4)에 무신별시에서 병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군수에 올랐다.
박두세 / 朴斗世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733(영조 9).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할아버지는 이건, 아버지는 율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직이 제수되었으며, 1686년 의금부도사로 권대운을 압송할 때 편리를 보아주었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진주
박문수 / 朴文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56).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로 뽑혔다. 이듬 해 세자시강원설서·병조정랑에 올랐다가 1724년 노론이 집권할 때 삭직됐다.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1730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가 기민에 힘
박문일 / 朴文一 [종교·철학]
1822년(순조 22)∼1894년(고종 31). 조선 후기의 학자. 도정의 아들, 어머니는 김태려의 딸이다. 이항로의 문인, 1866년(고종 3) 사복시주부·평안도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으며, 1882년 사헌부지평·사헌부집의 등의 직이 내려졌으나 모두
박민 / 朴敏 [종교·철학/유학]
1566(명종 21)∼1630(인조 8). 조선 중기의 학자. 정구의 문인이다.『대학』과『심경』을 배울 때 정구는 그의 기국이 충후함을 인정하여 제자들에게 그를 스승으로 삼을 것을 말하고는 하였다. 그 뒤 장현광을 만나 역리를 의논할 때 장현광은 그의 높은 학문에 감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