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황익청 / 黃益淸 [종교·철학/유학]
1589년(선조 22)∼1659년(효종 10).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황언주, 어머니는 안윤금의 딸이다. 1621년(광해군 13)에 향시에 장원하였으며, 1624년(인조 2)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학유에 재수되었다. 1652년에
황인수 / 黃麟秀 [역사/근대사]
1886-194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교하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최창섭 등과 장날을 기하여 계속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군자금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건국표창이 추서되었다.
황일호 / 黃一皓 [종교·철학/유학]
1588(선조 21)∼1641(인조 19). 조선 중기의 문신. 황원 증손, 할아버지는 황대수, 아버지는 황척, 어머니는 강백룡의 딸이다. 큰아버지 황신에게 입양되었다. 조수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음보로 운봉현감·전주판관·임천군수 등을 역임하고, 1635년(인조 1
황재 / 黃梓 [종교·철학/유학]
1689(숙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 황신구 증손, 할아버지는 황흠, 아버지는 황서하, 어머니는 박태연의 딸이다. 1718년(숙종 4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강원도관찰사, 부제학, 이조참의,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저서로는 두 차례에 걸쳐 청나라에 다
황재영 / 黃在英 [종교·철학/유학]
1835년(헌종 1)∼1883년(고종 20). 이인하의 아들이다. 1883년(고종 20)에 선공감감역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퇴하였다. 영남의 학자 가운데 실천적 학자로는 황재영만한 이가 드물었다고 한다. 저서로는《대계유고》 7권이 있다.
황재옥 / 黃在玉 [역사/근대사]
1880-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여주(驪州)이다. 1919년 4월 천도교 측의 지시를 받은 경성농업학교 재학생 원필희(元弼熙)가 경기도 여주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책임지고, 여주군의 각 면(面)을 돌며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운동
황재운 / 黃在雲 [역사/근대사]
1887-1939.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본래 증산면 화선리 사람으로, 일을 보러 왔다가 1919년 3월 4일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이 주동한 반석면 상사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반석교회와 원장교회가 중심이 되어 계획하던
황재현 / 黃載顯 [종교·철학/유학]
1848년(헌종 14)∼1903년. 조선 말기의 무인. 1878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에 임명되어 관계에 진출하였다. 1881년 김홍집이《조선책략》을 들여온 것이 발단이 되어 전국이 척사상소로 비등할 때, 영남유생 이만손의 만인소에 이어 충청도 대표로 홍시중과 함께
황정해 / 黃正海 [역사/근대사]
1918-1941. 일제 강점기 항일군·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혼춘현(琿春縣)이다. 부친 독립운동가 황병길(黃炳吉)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누나 손에 자랐다. 연통랍자(煙筒拉子)의 한인소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대황구
황종국 / 黃鍾國 [교육/교육]
1891-미상. 일제 강점기 교육자·관료. 창씨 개명한 이름은 중산부웅(中山富雄)이다. 본적은 함경북도 부령군(富寧郡) 청암면(靑岩面)이다. 1908년(융희 2) 사립박명학교(私立博明學校) 교감과 1909년(융희 3) 연천(連川)사립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황종화 / 黃鍾和 [역사/근대사]
1878-1950.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진주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경상남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하여 독립선언문과 격문 등을 배포하여 각 지방에서의 만세운동을 선동하였다. 같은해 4월 이운형(李運衡)·이영봉(李永鳳)·김규열(金圭烈) 및 임
황준량 / 黃俊良 [종교·철학/유학]
1517(중종 12)∼1563(명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황영손의 증손, 할아버지는 황효동, 아버지는 황치, 어머니는 황한필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40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권지성균관학유로 임명되고, 이어 성주훈도로 차출되었다. 신녕
황진연 / 黃珍淵 [역사/근대사]
1899-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명천(明川)이다. 1918년 1월 거주지를 만주(滿洲)로 옮긴 후 한의원을 운영하며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당원이 되었다. 1930년 ‘간도 5·30봉기’ 때 길림성(吉林省) 연
황진이 / 黃眞伊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박연」,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등을 지은 기녀. 개성(開城) 출신. 확실한 생존연대는 미상이다. 중종 때의 사람이며 비교적 단명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황진이가 지은 한시에는 「박연(朴淵)」·「영반월(詠半月)」·「등만월대회고(登滿月
황찬서 / 黃贊西 [역사/근대사]
1873-191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찬서(黃贊瑞)이다.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 강한 항일의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의병 활동을 선전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이후 남원(南原)에서 일본 상품의 불매운동, 세금불납, 토지 불매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황창섭 / 黃昌燮 [역사/근대사]
1896-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예천(醴泉)이다. 잡화상·자전거포·철공업 등에 종사하였다. 1925년 예천청년회 검사위원·예천신흥청년회 교양부담당 상무집행위원·사회주의 사상단체 오오회(五五會) 집행위원, 1927년 예천사우회
황창오 / 黃昌五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생. 일찍이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각오하고 있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참가하여 고향인 화성군 태안면 삼정리에서 대중을 규합, 조직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계속 독립사상을 고취
황철 / 黃鐵 [예술·체육/사진]
1864-1930. 사진가·서화가·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야조(冶祖), 호는 어문(魚門)·무명각주(無名閣主). 한성부(漢城府) 출생. 자헌대부 규장각제학 윤수(潤秀)의 둘째 아들이다. 서화가로서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사진에서 떠난 이후로, 1913년부터는
황최 / 黃最 [종교·철학/유학]
1680년(숙종 6)∼1750. 황우성의 아들이다. 1725년(영조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대과는 실패하였다. 만년에 후진 양성에 전심하였는데 그 문하에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많았다. 저서로는 《독성재집》이 있다.
황최언 / 黃最彦 [종교·철학/유학]
1711년(숙종 37)∼미상. 조선 후기 문신. 황근중 5대손, 증조는 황석, 조부는 황응두이다. 부친 황수태와 모친 이만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우정구이다. 1735년(영조 1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등용이 늦었다. 1769년(영조 45)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