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황성하 / 黃成河 [예술·체육/회화]
1891-1965. 한국화가. 호는 우청(又淸). 개성 출생. 개성이 낳은 명성 높은 4형제 서화가(宗河·成河·敬河·庸河) 중 둘째로 지두화(指頭畵)의 명인이었다. 산수·인물·영모·신선도 외에 서예에도 능하여 조선미술전람회(鮮展)의 서예 부문에도 입선한 바 있으며,
황수일 / 黃壽一 [종교·철학/유학]
1666년(현종 7)∼1725년(영조 1). 증조부는 황언주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경서에 침잠하였으며, 이남령의 문인이 되었다. 정시한과 왕래하였으며, 이유장과 교유하며 더욱 절차탁마를 하였다. 특히 예제에 밝았으며 세간의 이록이나 부귀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황술조 / 黃述祚 [예술·체육/회화]
1904-1939년. 서양화가. 호는 토수(土水). 경상북도 경주에서 대부호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였다.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도일하여 1930년에 동경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개성의 호수돈고등여자보통학교와 개성상업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작가생활을 시작
황신 / 黃愼 [종교·철학/유학]
1560(명종 15)∼1617(광해군 9). 조선 중기의 문신. 황형 증손, 할아버지는 황원, 아버지는 황대수, 어머니는 곽회영의 딸이다. 성혼과 이이의 문인이다. 1588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진주부사, 공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일
황양현 / 黃良鉉 [종교·철학/유학]
1863-1931. 일제강점기의 유학자로, 자는 순상(舜翔)이고, 호는 완월(翫月).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아버지는 황재후(黃載厚)이고, 어머니 나주임씨(羅州林氏)는 임처권(林處權)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행실이 남달랐다. 집이 가난하였으나 독서를 게을
황에스터 / 黃Esther [역사/근대사]
1892-1971. 독립운동가. 일명 애덕(愛德)·애시덕(愛施德). 1913년 동료교사 김경희(金敬喜)와 교회 친구 안정석(安貞錫)과 더불어 비밀결사대인 송죽회(松竹會)를 조직하고, 애국사상이 깊은 학생들을 엄선하여 정신교육을 행하고 송죽회의 자회(子會)설립을 지도하
황여일 / 黃汝一 [종교·철학/유학]
1556(명종 11)∼? 조선 중기의 문신. 황세충의 증손, 할아버지는 황연, 아버지는 황응징이다. 1576년(선조 9)에 진사가 되고 1585년 개종계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88년 검열, 예천군수, 길주목사, 동래진병마첨절제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조천록
황영 / 黃暎 [역사/근대사]
1848-1921. 일제강점기 의열(義烈). 남원시(南原市) 사매면(巳梅面) 출신이다. 1910년(융희 4)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되고, 1919년(융희 13) 고종이 승하(昇遐)하자, 나라 잃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자결하였다. 그러나 가족들에
황용한 / 黃龍漢 [종교·철학/유학]
1744년(영조 20)∼1818년(순조 18). 아버지는 황직대이다. 이상정에게서 문장을 인정받아 일대의 홍유들이 교류하기를 청했다. 1780년(정조 2) 남성시를 보러가다가, 중도에 뜻을 굳히고 돌아와 소백산 두곡마을에 은거한 채 경전에 마음을 쏟았다. 정탁의《약포집
황웅도 / 黃熊度 [역사/근대사]
1901-195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고성(固城)이다. 1920년 12월 고성군 고성면에서 독립운동사상 고취를 위한 청년 중심의 일심회(一心會)를 결성하고 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8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황원보 / 黃元寶 [역사/근대사]
1900-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영흥(永興)이다. 1923년 8월 영흥군 인흥면(仁興面)에서 신창청년회(新昌靑年會) 조직 결성에 가담하고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1928년 2월 간도(間島) 원숭학교(元崇學校)
황원선 / 黃源善 [종교·철학/유학]
1798년(정조 22)∼1873년(고종 10). 조선 후기 학자. 부친은 황석로, 외조부는 정종로이다. 처조부는 남한조이다. 남한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교유한 인물로는 재종 동생 황난선 등이 있다. 만년에는 옥동서원·백화서당 등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유고로 7
황원후 / 黃元厚 [역사/근대사]
1897-1920. 평북 용천(龍川) 출신이다. 1915년 만주에 가서 한족회(韓族會)에 가입하고 신성학교(信成學校)교장을 지냈다. 이듬해 한족회 강남구 갑장(江南區甲長)으로 군자금조달에 힘썼으며, 1919년 3·1 운동 때는 강남(江南) 지구 시위운동을 주도했고,
황위현 / 黃渭顯 [역사/근대사]
1891-1966.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난사(蘭史)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간전면(艮田面) 만수동(萬壽洞) 구안실(苟安室: 매천 황현의 서재)에서 태어났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중부(仲父)의 양자로
황유중 / 黃有中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20(광해군 12). 조선 중기의 문신. 황사우의 증손, 할아버지는 황응규, 아버지는 황섬, 어머니는 이전의 딸이다. 1606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이듬해 전적·병조좌랑을 지내고 홍문관에 들어갔다.
황윤경 / 黃潤慶 [역사/근대사]
1908-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봉화(奉化)이다. 1924년 3월 대성학원(大成學院)을 졸업하였으며, 1926년 4월 내성(乃城)프로운동자동맹 집행위원직을 맡아 사회주의사상 전파와 동지 규합 등에 힘쓰던 중 1927년 1월 일본 경찰에 체
황윤석 / 黃胤錫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운학자(1729∼1791). 1766년에 천거되어 장릉참봉에 임명, 뒤이어 사포서의 직장·별제를 거쳐 익위사의 익찬이 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1779년(정조 3) 목천현감, 1786년 전생서의 주부를 거쳐 전의현감이 되었다. 저서로《이재유고》·《이재속
황윤후 / 黃胤後 [종교·철학/유학]
1587(선조 20)∼1648(인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황세장 증손, 할아버지는 황대림, 아버지는 황응성, 어머니는 노운의 딸이다. 1625년(인조 3) 순릉참봉에 천거되고, 이 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조좌랑, 황해도사, 공조정랑, 순천군수 등을
황응규 / 黃應奎 [종교·철학/유학]
1518(중종 18) - 1598(선조 31). 아버지는 황사우, 어머니는 연일오씨이다.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서 수업, 예조, 형조, 공조의 좌랑과 정랑을 지내고 사유로 선발되어 성균관 직강, 사성을 지내고, 사섬시, 예빈시, 종부시 정을
황익재 / 黃翼再 [종교·철학/유학]
1682(숙종 8)∼1747(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 황희 10대손, 황집 증손, 할아버지는 황재윤, 아버지는 황진하, 어머니는 김진익의 딸이다. 1701년(숙종 2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충청도도사, 종성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