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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홍충희 / 洪忠熹 [역사/근대사]
1878-1946. 독립운동가. 서울 출생. 호는 우봉(禹峰). 1903년 대한제국 무관학교 보병과를 졸업하고 대한제국 육군부위(陸軍副尉)를 지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의 한 사람인 권동진(權東鎭)을 도와 참여한 뒤 김규식(金奎植)·김찬수
홍치중 / 洪致中 [종교·철학/유학]
1667(현종 8)∼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문신. 명구 증손, 할아버지는 중보, 아버지는 득우, 어머니는 김경여의 딸이다. 1706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이 되었다. 그 뒤 형조판서, 병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홍택하 / 洪宅夏 [종교·철학/유학]
1753년(영조 29)∼1820년(순조 20). 조선 후기 문신·유학자. 부친은 홍구길, 생부는 홍구명이다. 이상정과 최흥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86년(정조 10) 식년시 을과 4위로 문과 급제하여 관직이 돈령부도정에 이르렀으나 사직하였다. 이후 경상북도 군위
홍학순 / 洪學淳 [역사/근대사]
1902-1934. 독립운동가. 일명 홍학원(洪學元)·홍학(洪學).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 1924년 무장 항일운동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通義府) 제5중대에 입대하여 국내에서 일본경찰과 접전하면서 군자금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192
홍학연 / 洪學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7∼1852). 강원도암행어사·대사성을 거쳐 공조참의·이조참판·도승지·대사헌에 이어 광주부유수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어갔다. 1850년 지경연사·지춘추관사·도총관이 되고, 이듬해 공조판서가 되었다. 역대의 사적과 국조의 전장에 널리 통하였고,
홍한 / 洪瀚 [종교·철학/유학]
1451(문종 1)∼1498(연산군 4). 조선 전기의 문신. 자경 증손, 할아버지는 익생, 아버지는 귀해, 어머니는 민효열의 딸이다. 김종직의 문인이다. 1485년(성종 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490년 지평을 거쳐 1493년 헌납이 되었다. 1495년(연산
홍해성 / 洪海星 [예술·체육/연극]
1893-1957. 연출가. 본명은 재원(在遠). 대구 출생. 1920년 봄에는 김우진(金祐鎭)·조명희(趙明熙) 등과 함께 극예술협회를 조직하였다. 1921년에는 이 회원들이 주동이 된 동우회 순회연극단의 일원으로서 조명희가 쓴 〈김영일(金英一)의 사(死)〉의 연출을
홍현보 / 洪鉉輔 [종교·철학/유학]
1680(숙종 6)∼1740(영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주원 증손, 할아버지는 만용, 아버지는 중기, 어머니는 이민서의 딸이다. 1718년(숙종 44)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저작에 임명되었다. 1725년(영조 1) 수찬으로 있을 때 탕평책을 상소하여 왕으로부터
홍현주 / 洪顯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부마(1793∼1865). 정조의 둘째딸 숙선옹주와 혼인하여 영명위에 봉하여졌다. 1815년(순조 15)지 돈령부사가 되었다. 문장에 뛰어나 당대에 명성을 떨쳤다. 저서로는《해거시집》이 있다.
홍형 / 洪泂 [종교·철학/유학]
1446(세종 28)∼1500(연산군 6). 조선 중기의 문신. 자경 증손, 할아버지는 익생, 아버지는 귀해, 어머니는 민효열의 딸이다. 1477년(성종 8) 춘장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479년 승정원주서가 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489년 경원판관이 되었다.
홍호 / 洪鎬 [종교·철학/유학]
1586(선조 19)∼1646(인조 24). 조선 후기의 문신. 귀달의 후손, 언국의 증손, 할아버지는 경삼, 아버지는 덕록, 어머니는 유승선의 딸이다. 정경세의 문인이다.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갔다. 예조참의, 동부승지, 우부승
홍효선 / 洪孝善 [역사/근대사]
1879-1932.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서 홍면(洪)·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홍명선(洪明善)·김교창(金敎昌)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 송산면사무소 앞에
홍흥 / 洪興 [종교·철학/유학]
1424(세종 6)∼1501(연산군 7). 조선 중기의 문신. 용 증손, 할아버지는 덕보, 아버지는 심, 어머니는 윤규의 딸이다. 좌의정 응의 아우이다. 1443년(세종 25) 사마시에 합격, 음보로 세마에 등용되었다. 감찰, 평택현감, 지평, 형조정랑, 호조정랑, 장
화평옹주 / 和平翁主 [종교·철학/유학]
1727년(영조 3)∼1748년(영조 24). 어머니는 영빈이씨이다. 사도세자와는 친동기간이다. 1727년(영조 3)에 창경궁 집복헌에서 태어난다. 화평옹주는 예조참판 박사정의 아들인 금성위 박명원에게 하가하였다. 화평옹주는 심성이 곱고 너그러워 사도세자를 위로했다고
황갑주 / 黃甲周 [역사/근대사]
1894-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해수(海水)이고, 호는 배천(配泉)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승지(承旨) 황적(黃迪)의 12세손이다. 조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황치방(黃致坊)이다. 1919년 3·1운동(三一運動)이 일어난 후, 3월 10일 전라북도
황경원 / 黃景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예학자(1709∼1787). 1740년 증광문과 병과급제 후 이조참판 겸 대제학·예조판서·공조판서·중추부판사 등을 지냈다. 서예에 능하고, 예학에 정통, 고문에도 밝았다. 저서로《남명서》·《명조배신전》등이 있다.
황계희 / 黃啓熙 [종교·철학/유학]
1727년(영조 3)∼1785년(정조 9). 조선 후기 학자. 부친 황도중과 모친 이만헌의 딸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황서희이다. 이상정의 문인이다. 17세에 부친상을 당하고 난 후부터는 더욱 학문에 정진하여 능통하지 않은 학문이 없었다. 특히《대학
황곡 / 黃斛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1∼?). 1765년(영조 41) 식년사마시 생원 3등으로 합격했다. 관학에 있을 때《소학》교육의 진흥책을 청하는 글을 올렸다. 이학의 깨달음이 깊어〈태극이기〉를 짓고, 혼천의를 만들었다.
황구하 / 黃龜河 [종교·철학/유학]
1672(현종 13)∼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문신. 형 증손, 할아버지는 신구, 아버지는 건, 어머니는 이문행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좌부빈객, 호조판서, 동지경연사, 한성부판윤,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황국주 / 黃國柱 [종교·철학/신종교]
항일기의 종교운동가(?-?). 도덕적 완전주의를 주장하였으며 신비주의적 영체교환의 교리를 가르쳤다. 1933년 신앙과 사상을 포교하기 위해 《영계》라는 잡지를 간행하였으나, 1933년 평안도의 안주 노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