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홍성 / 洪晟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2∼1778). 1723년(경종 3)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에 보직되었다가 1762년(영조 38) 지평에 올랐다. 1772년에 가자되어 지중추부사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어갔다. 시와 글씨에 능하였다.
홍성익 / 洪成益 [역사/근대사]
1883-1920년.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정주 출신.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하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1902년에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1907년에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신민회(新民會)에 가입,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하였다. 1910년 데라
홍세태 / 洪世泰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유하집』을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무관이었던 익하(翊夏)이며 어머니는 강릉유씨(江陵劉氏)이다. 홍세태는 5세에 책을 읽을 줄 알고 7, 8세에는 글을 지을 만큼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으나 신분이 중인층이라 제약이 많았다. 시로 이름이 나서 김창협(金昌協)·김창
홍수보 / 洪秀輔 [종교·철학/유학]
1723년(경종 3)∼1800.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홍주문, 조부는 홍만기이다. 부친은 홍중효, 생부는 홍중후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2년(영조 38) 승지로 재직 중 영조의 명을 받아 예문관 현판을 써 붙였다. 그 후 강
홍수주 / 洪受疇 [종교·철학/유학]
1642(인조 20)∼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 처윤 아들이다. 1682년(숙종 8) 문과에 급제, 벼슬은 승지·충청도관찰사·대사간 등을 거쳐 예조참의에 이르렀다. 1695년 동지사행의 부사로 중국에 다녀왔다. 유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묵매
홍순갑 / 洪淳甲 [역사/근대사]
1896-1929. 독립운동가. 호는 우당(愚堂). 전라북도 익산 출신. 1919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재학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이상재(李商在) 지도 아래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1921년에 붙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출옥 후 중국
홍순녕 / 洪淳寧 [교육/교육]
1887-1949년. 일제강점기 교육자. 호는 남농(南農)이다. 1910년(융희 4) 4월 공립(公立) 수원농림학교(水原農林學校)를 졸업한 뒤 제주(濟州)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등교사(中等敎師)가 되어, 1912년 5월 공립 제주농업학교(濟州農業學校)에 교사로 발령받
홍순목 / 洪淳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6∼1884). 갑신정변을 일으킨 영식의 아버지이다. 1844년(헌종 10)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수찬을 지내고, 1846년 초계문신에 뽑혔다. 1863년 대사헌이 되었으며, 1872년 영의정을 거쳐 영돈령부사가 되었다. 1876년
홍순범 / 洪順範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만주(滿洲)로 이주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27결사대(決死隊)에 가담하여 이탁(李鐸)의 주도로 김병수(金炳洙)·김용우(金容友)·나경호(羅景鎬)·노윤선(盧胤善)·박기제(朴基濟)·박기한(朴基寒)·박진태(朴鎭台)·송동호(宋東浩)·
홍순병 / 洪淳柄 [종교·철학/유학]
1871-1941년.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윤칠(允七)이고, 호는 몽와(蒙窩)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문정공(文正公) 홍언박(洪彦博: 1309∼1363)의 후예이며, 문경현감(聞慶縣監) 홍함(洪涵: 1549∼?)의 후손으로, 홍병한(洪秉翰)의 현손이다. 본
홍순주 / 洪淳柱 [종교·철학/유학]
1897-1971. 현대 유학자. 자는 겸오(兼五)이고, 호는 회당(晦堂)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청웅면(靑雄面) 가전(柯田)에서 태어났고 후에 임실군 지사면(只沙面) 선원(仙源)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홍종혁(洪鍾爀)이다. 어려서부터
홍순학 / 洪淳學 [문학/고전시가]
개항기 대사간, 예조참의, 감리인천항통상사무 등을 역임한 문신. 홍기종(洪夔鐘)의 아들이다. 족숙(族叔) 홍석종(洪奭鐘)에게 입양되어 경기도 적성(積城)에서 생장하였다. 1857년(철종 8) 친림 춘당대 대왕대비전 보령 장제칠순(親臨春塘臺大王大妃殿寶齡將躋七旬)·왕대비
홍승경 / 洪承敬 [종교·철학/유학]
1876-1947.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성능(聖能)이고, 호는 운초(雲樵)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고조는 홍낙질(洪樂質), 증조는 홍우영(洪遇榮), 조부는 홍범주(洪範周)이다. 부친 백남(白南) 홍우익(洪祐益)과 모친 우계이씨(羽溪李氏) 사이에서 3남 가
홍승두 / 洪承斗 [종교·철학/유학]
1879-1953년.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창극(昌極)이고, 호는 춘당(春塘)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경상남도 거창(居昌) 출신이다. 증조부는 홍중근(洪重謹)이고, 조부는 홍학주(洪鶴柱)이며, 아버지는 홍우증(洪佑增)이다. 집이 가난하여 낮에는 밭을 갈고
홍승하 / 洪承河 [종교·철학/개신교]
1863-1918년. 감리교 목사. 경기도 영흥도(靈興島) 출신.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다가 국운의 쇠퇴함을 보고 일본에 건너가 무관학교에 다녔다. 귀국 후 국권수호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중 인천에서 미감리회 선교사 존스(Jones, G. H., 趙元時)를 만나
홍승한 / 洪承漢 [종교·철학/개신교]
1881-미상. 장로교 목사·선교사. 호는 온암(溫菴). 평안북도 철산 출신. 1909년 철산의 영동교회(嶺洞敎會) 장로로 장립되었으며 1911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912년 9월 경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대구제일교회의 전신인 남성정교회(南城町敎會)에
홍승헌 / 洪承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54∼?). 1875년(고종 12) 경과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수찬과 부교리를 거쳐, 가례도감도청과 부승지를 지냈다. 1902년 궁내부특진관과 충청남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정부에서 지계사업과 양전사업을 실시하자 충청남도에서 이 사업을 총괄하는 충
홍시제 / 洪時濟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8∼?). 1790년(정조 14) 증광 문과에 급제, 벼슬은 지평·우통례를 거쳐 1814년(순조 14) 부호군이 되었다. 신유박해 때 관직이 추탈된 채제공의 피무를 변명하다가 경상도 기장현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대사간·안주목사·승지·호군 등의
홍식 / 洪湜 [종교·철학/유학]
1449(세종 31)∼1504(연산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자경 증손, 할아버지는 익생, 아버지는 귀해, 어머니는 민효열의 딸이다. 1483년(성종 1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거쳐 박사·전적·이조좌랑·정언을 역임한 뒤, 1490년 정랑·지평에 올랐
홍양명 / 洪陽明 [역사/근대사]
1896-1950.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언론인. 본명은 홍순기(洪淳起)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제주도 제주시(濟州市) 삼도동(三徒洞)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정의현감(旌義縣監)을 역임했던 홍재진(洪在晋)이고, 아버지는 홍종언(洪鍾彦)이다.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