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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법제
왕세자(문효세자)정명망단 / 王世子(文孝世子)定名望單 [정치·법제]
정조와 의빈성씨 사이에 태어난 정조의 장자인 왕자 이름을 1784년(정조 8) 7월 6일에 '전(琠)'으로 정한 사실을 기록대둔 왕세자정명 망단. 왕세자정명망단을 올려서 국왕의 낙점을 받은 결과를 기록해 둔 문서이다. 단자의 말미에 '건륭 49년(1784) 7월 6일
왕세자(숙종)정명망단 / 王世子(肅宗)定名望單 [정치·법제]
현종과 명성왕후 사이에 타어난 원자의 이름을 의정하기 위해 1666년(현종 7) 3월에 빈청에서 국왕의 낙점을 바라며 올린 왕자정명망단. 이 망단은 원자의 이름 글자로 '영, 경, 순'의 세 자를 써서 삼망을 갖추어 올린 것인데, 이에 대해 현종은 '세 번째의 망 '순
왕세자(숙종)정자망단 / 王世子(肅宗)定字望單 [정치·법제]
현종과 명성왕후 사이에 태어난 원자의 자를 의정하기 위해 1670년(현종 11) 2월에 빈청에서 국왕의 낙점을 바라며 올린 왕자정자망단. 이 망단은 원자의 자로 '명보, 광언, 명윤'의 세 가지를 써 삼망으로 올린 것인데, 이에 대해 현종은 첫 번째의 망 '명보'에 점
왕세자(순종)정명망단 / 王世子(純宗)定名望單 [정치·법제]
고종과 명성왕후 민씨 사이에 태어난 고종의 장자인 왕자의 이름을 의정하여 1875년(고종 12) 1월 7일에 빈청에서 국왕에게 올린 왕세자정명 망단. 이 망단은 왕세자의 이름으로 '척, 전, 시'의 세 글자를 써 삼망으로 올린 것인데, 고종은 첫 번째의 망인 '척'자에
왕세자(순종)정자단자 / 王世子(純宗)定字單子 [정치·법제]
고종과 명성왕후 민씨 사이에 태어난 고종의 장자인 왕자의 자를 '군방'이라고 정한 시실을 기록해 둔 왕세자정자 단자. 이는 왕세자정명 망단을 올려서 국왕의 낙점을 받은 결과를 기록해 둔 단자로 보이는 문서이다. 자(字)를 의정한 지 7년 만에 왜 이 단자가 작성되었는지
왕세자(순종)정자망단 / 王世子(純宗)定字望單 [정치·법제]
고종과 명성왕후 민씨 사이에 태어난 고종의 장자인 왕자의 자를 의정하기 위해 1875년(고종 12) 1월에 빈청에서 국왕의 낙점을 바라며 올린 왕세자정자 망단. 이 망단은 왕세자의 자로 '군방, 천필, 건만'의 세 가지를 써 삼망으로 올린 것인데, 고종은 첫 번째인 '
왕세자(효명세자)정자망단 / 王世子(孝明世子)定字望單 [정치·법제]
순조의 장자 효명세자의 자를 1819년(순조 19) 3월에 '덕인(德寅)'이라고 의정하였음을 기록해 둔 왕세자 정자 단자. 이 단자의 제목으로 '왕세자정자(王世子定字)'라고 쓰고, 본문에서 그 자를 '덕인'이라고 적었다. '가경 24년(1819) 3월 7일 계'라는 주
왕세자(효장세자)시호망단 / 王世子(孝章世子)諡號望單 [정치·법제]
효장세자의 시호를 의정하기 위해 1728년(영조 4) 12월 빈청에서 국왕의 낙점을 바라며 올린 왕세자시호 망단. 이 망단은 왕세자의 시호로 '장효(莊孝), 효장(孝章), 장헌(章獻)'의 세 가지를 써서 삼망을 갖춘것인데, 영조는 두 번째의 망 '효장'에 점을 찍었다
왕세자관례교서 / 王世子冠禮敎書 [정치·법제]
1882년(고종 19) 1월 20일. 고종이 왕세자의 관례에 발급한 교서. 이 교서는 인기가 없고 왕세자의 이름이 기록될 공간에 '某'라고만 되어 있으며, 첨지가 붙어있지 않아 정식교서가 아니다. 내용은 의정부 영의정 서당보에게 예식을 행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같은 문
왕세자관례시별단 / 王世子冠禮時別單 [정치·법제]
1882년(고종 19) 1월 20일에 시행된 왕세자 관례시 행사를 주관하는 관원과 서리들의 명단. 주인은 흥인군(興寅君)이고, 빈(賓)은 영의정 서당보(徐堂輔)이며, 찬례 민겸호(閔謙鎬), 집관 이중칠(李重七) 등을 비롯해 세자시강원의 사(師), 부(傅) 및 서리 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