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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한호 / 韓濩 [종교·철학/유학]
1543년(중종 38)∼1605년(선조38). 조선 중기의 서예가. 대기 5대 손, 세관의 손자이다.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83년(선조 16)와서별제에 제수되었다. 글씨로 출세하여 사자관으로 국가의 여러 문서와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도맡
한홍기 / 韓洪基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포항제철 프로축구팀 감독, 축구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축구지도자. 평안남도 대동 출생. 1945년평안남도 대동군 순안중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축구선수로 활약하기 위해 월남하였다. 월남 후, 1947년부터 1957년까지 10년간 상호은행과 육군첩보
한후수 / 韓後遂 [종교·철학/유학]
1701-1779. 아버지는 태진, 할아버지는 한유기, 한원진의 조카이다. 어머니는 완산이씨이고, 배위는 청주곽씨이다. 한후수는 문학과 덕행이 일세에 드러났고, 과거에 여러번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였다.
한훈 / 韓焄 [역사/근대사]
1890-195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성초(聖初). 호는 송촌(松村). 의병활동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했고, 광복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광복회로 개편되어, 강화된 항일전을 전개하고 친일파 숙청활동을 하던 중 발각되자 재차 만주로 망명했다. 1920년 암살단과
한훈 / 韓訓 [종교·철학/유학]
?∼1504(연산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영정 증손, 할아버지는 전, 아버지는 충인, 어머니는 김중엄의 딸이다. 도승지 신수근의 처남이다. 1494년(성종 25)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정언, 수찬, 소격서영 등을 역임하였다.
한흥 / 韓興 [역사/근대사]
1888-195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연해주의 권업신문사 통신원과 간북북부총판부 서기 등으로 항일운동을 했고, 군자금 조달을 하다가 붙잡혀 복역한 뒤, 신간회 상무간사로 활약하였다. 함흥중앙학원·경성여자상업학교·함흥대흥상업학원을 설립하여 교육에 힘썼고, 함흥대동학
한흥교 / 韓興敎 [역사/근대사]
1885-1967. 독립운동가. 일명 진산(震山)·헌산(憲山). 부산 출생. 1911년 10월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혁명군 구호의장(救護醫長)으로 쑤저우(蘇州)·전장(鎭江) 등 전선에 나가 참전하였다. 1912년 북벌혁명군홍십자회대장(北伐革命軍紅十字會隊長)에 임명되었으며
한흥근 / 韓興根 [역사/근대사]
1886-1948.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백암(白岩). 함경남도 원산 출신. 응구(應球)의 아들이다. 어려서 향리에서 사서삼경을 수학하다가 근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원산 보명학교(普明學校)를 졸업한 뒤 측량학교(測量學校)를 다시 이수하였으며, 20세
한희룡 / 韓羲龍 [역사/근대사]
1888-197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한의룡(韓義龍)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용강(龍岡)이다. 1919년 서울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을 시발점으로 용강군 일대에서도 소규모 시위운동과 집회들이 산발적으로 시행되자 강예순(姜禮舜)·최용선(崔龍善) 등이
함귀봉 / 咸貴奉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조선교육무용연구소 소장, 문교부예술위원회 무용위원, 현대무용가집단 대표 등을 역임한 무용가.교육자. 일본 동경에서 주로 아동교육무용 혹은 건강무용운동(健康舞踊運動)을 주도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한국 교육무용을 위해 힘썼다. 6·25전쟁 때 북한으로 갔다.
함대훈 / 咸大勳 [문학/현대문학]
1906-1949년. 신극운동가·소설가·번역문학가. 호는 일보(一步). 황해도 송화 출생.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금융곡물무역에 근무하였다. 그뒤 일본대학 경제과에 입학한 후 1931년 동경외국어학교 노어과(露語科)를 졸업하고 해외문학파 동인으로서 문단에 등장하였다
함석은 / 咸錫殷 [역사/근대사]
1892-1928.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평양의 숭덕학교(崇德學校)교원으로 평안도 지방 학생운동의 책임자가 되어 평양의 각 학교 교사 및 학생을 규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함석헌 / 咸錫憲 [종교·철학]
현대의 문필가·민중운동가(1901∼1989). 1927년 동인지 《성서조선》 창간에 참여하였다. 1956년 이후에 계간지 《사상계》를 통하여 정치적·사회적 문제들을 비판하였다. 저서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인간혁명》·《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이 있다.
함세덕 / 咸世德 [예술·체육/연극]
1915-1950년. 극작가. 전라남도 목포 출생. 인천광역시 강화에서 자라, 서울 선린 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찍부터 극작가의 꿈을 가지고 충무로의 일한서방(日韓書房)에 취직하여 많은 책을 읽는 한편 유치진(柳致鎭)에게 개인적으로 극작수업을 받았다. 1936년 단막
함수만 / 咸壽萬 [역사/근대사]
1907-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마산면(馬山面)이다. 전주신흥학교(全州新興學校) 교우회(校友會) 임원 등을 역임하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발발한 광주학생운동으로 인해 민족의식이 크게 고취되었다. 이에 개교 22주년
함찬근 / 咸贊根 [역사/근대사]
미상-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초순 이상룡(李相龍) 등을 중심으로 서간도(西間島) 유하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에서 조직된 한인자치기구 한족회(韓族會)의 구도검찰(區都檢察) 등을 역임하면서 한족회의 자치조직을 효율적으로 지도하였으며, 재만동
함태영 / 咸台永 [역사/근대사]
1873-1964. 독립운동가·정치가·종교인.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송암(松岩). 함경북도 무산 출생. 우택(遇澤)의 아들이다. 1884년(고종 21) 방랑벽이 심한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상경하여, 조선 말엽 격동하는 내외정세하에서 사숙(私塾)을 전전하면
함형수 / 咸亨洙 [문학/현대문학]
1914년∼1946년. 시인. 함경북도 경성 출생. 고향에서 중등과정을 마치고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에 입학하였다. 이때 서정주(徐廷柱)와 김동리(金東里)를 알게 되어 문학에 입문한 것을 계기로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이 되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함화진 / 咸和鎭 [예술·체육/국악]
1884-1948년. 한말·일제강점기의 음악인. 원명은 화진(華鎭). 자는 순중(舜重), 호는 오당(梧堂). 본관은 양근(楊根). 뛰어난 이론가이며 전공은 거문고였으나 가야금에도 출중하였다. 세습적인 악사집안으로 증조부 윤옥(潤玉)은 순조·헌종 때의 악사, 할아버지
햐야시 곤스케 / 林權助 [정치·법제/외교]
1860-1939 일본의 외교관. 1889년(고종 26) 우리나라 인천주재 부영사, 1890년 영사, 본부 통상국장을 거쳐 1899년 주한공사로 재차 부임했다. 7년간 재직중 러시아세력을 몰아내고 일본세력을 심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