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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김학진 / 金鶴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8∼?). 전라도에서 동학농민군이 봉기했을 때, 전라감사 김문현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홍문관학사·궁내부특진관이 되었으며, 그 뒤 시종원경·태의원경을 거쳐 홍문관태학사가 되었다. 일제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김한동 / 金翰東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0∼1811). 영남지방 재해민의 기근을 들어 환곡의 환수를 연기하여줄 것을 진언하였다. 대사간에 기용되었으며, 이어서 승지를 지냈다. 천주교를 믿어, 각종 제례에 참석하지 않아 지평 정언인의 탄핵을 받고 명천에 유배되었다.
김한록 / 金漢祿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현감 운경의 아들, 영조의 장인인 한구의 종제, 우의정 관주의 아버지이다. 한원진의 문인이다. 관직은 세자익위사세마에 그쳤으나, 종질인 구주와 함께 김상로·홍계희·정휘량·신만 등 벽파 대신들을 조종하여 1762년(영조 38) 사도세자
김한철 / 金漢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1∼1759). 사간원정언으로 재임할 때 붕당 타파를 상소하였다. 대사간에 발탁되었으며, 도승지·이조참판·경기관찰사·함경도관찰사 등 내외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양전의 실시를 주장하였고, 나중에 우참찬에 이르렀다.
김함의 묘 출토의복 / 金涵─墓出土衣服 [생활/의생활]
1985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김함(金涵: 1568∼1598)의 묘(墓)에서 출토된 복식 및 부장품 17점. 김함의 묘에서 발굴된 3점의 포(袍)류는 모두 장옷으로 면주(綿紬) 누비장옷 1점, 화문단 누비장옷 1점, 무명 솜장옷 1점이 있다. 뒷길이는 116
김항 / 金恒 [종교·철학/유학]
1826년(순조 26)∼1898년(고종 35). 조선 말기《정역》의 저자. 20세 때 민씨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몄으나 살림에는 뜻이 없어 독서만 하였으며, 영가를 계속 불렀다. 일찍이 이운규 밑에서 최제우·김광화와 함께 공부하였는데, 특히 이운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김항중 / 金恒重 [종교·철학/유학]
1653-1717. 조선후기 유학자. 부친은 방분, 모친은 이만겸의 녀이다. 1653년 12월 18일 예천 류전에서 태어났다. 1673년 조부와 부친을 연달아 잃고 1681년 모친상을 당하였다. 형제자매를 돌보며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 1717년 9월 18일 병으로 졸
김해 / 金楷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 - 1716(숙종 42). 아버지 김광현, 어머니 청주한씨이다. 경사에 두루 섭렵하여 약관도 안 되어 이미 주역을 읽어 심오한 이치까지 깨우쳐 <계몽복역>을 저술하였다. <상례비요>도 의심나고 잘못된 곳을 고정하였다. 또한 농암 김창협과 함께 제
김해 보현사 불교전적 / 金海 普賢寺 佛敎典籍 [종교·철학/불교]
조선후기 사찰 간행본으로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보현사에 소장된 불교경전. 사찰본. 김해 보현사에는 『십지론(十地論)』, 『간집록(刊集錄)』, 『청량국사화엄소초(淸凉國師華嚴疎鈔)』, 『전등(傳燈)』, 『원각경(圓覺經)』, 『법화경(法蓮經)』이 소장되어 있다. 모두 임
김해군호적대장 / 金海郡戶籍大帳 [사회/촌락]
1828년·1882년·1894년에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관내의 호구를 조사하여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관찬서.호적대장. 필사본 각 1책씩이 현재 일본 가쿠슈인대학(學習院大學)에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