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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지명 > 고지명
  • 문화 / 文化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신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궐구현(闕口縣)이었는데, 고려 초유주(儒州)로 고쳤다. 1018년(현종 9) 풍주(豊州, 또는 豊川)에 속하였으나, 1259년(고종 46) 문화현으로 바꾸고 감무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 현령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

  • 문화량 / 蚊火良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고성(固城) 지역의 옛 지명.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위치로는 고성과 사천(泗川) 사이이며, 문헌상에는 신라 때 고성군의 영현이 되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뒤의 변천은 알 수 없다. 문화량은 옛 발음으로 ‘문화라’라고 읽으며, ‘넓은 들’이라는 뜻이다. 지형

  • 물내혜 / 勿柰兮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무안 지역의 옛 지명. 신라의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무주(武州) 관할의 무안군으로 고쳤고, 944년(혜종 1) 물량군(勿良郡)으로 고쳤다. 991년(성종 10) 다시 무안이라 고쳐 나주에 속하게 하였고,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었다. 신라시대 무안

  • 미금 / 渼金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 있었던 지명. 양주군 미음면(渼陰面)과 금촌면(金村面)이 합쳐져 만들어진 지명이었다. 본래 양주군 금촌면(金村面)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미음면과 상도면(上道面) 일부를 합쳐 미금면으로 개칭되었다. 1979년 미금읍으로 승격되었다

  • 미질부성 / 彌秩夫城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지역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토축 성곽.산성. 481년(소지왕 3) 고구려가 말갈(靺鞨)과 더불어 북변에 침입하여 일곱 성을 취하고 다시 미질부에 침입하자, 신라군은 백제ㆍ가야군의 원조를 받아 길을 나누어 고구려를 막았다. 이곳은 본래 신

  • 민백 / 黽白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매숙차현(買熟次縣, 또는 買熱次縣)이던 것을 경덕왕이 민백현으로 고쳐 신녕현(新寧縣)에 합쳤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신녕현의 일부가 영천군에 편입되면서 화북면이 되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의 신녕현 고적조(古跡條)에는

  • 밀성 / 密城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옛 지명. 삼한시대 변한(弁韓)의 땅으로 뒤에 가야(加耶)에 속하였으나 신라 법흥왕 때 추화군(推火郡)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밀성군으로 고쳐 밀진(密津)·상약(尙藥)·오구산(烏丘山)·형산(荊山)·소산(蘇山) 등을 영현(領縣)으로 하였으

  • 반걸양 / 半乞壤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연백 지역의 옛 지명.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백제 근초고왕 때 고구려의 고국원왕 사유(斯由)가 반걸양(半乞壤)에 이르러 싸우려 하거늘, 왕이 태자를 보내어 이를 막게 하였다. 태자가 적을 크게 쳐부수어 수곡성(水谷城)까지 쫓아버렸다.”라고 되어 있다. 『대동

  • 반나부리 / 半奈夫里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이 되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반남군(潘南郡)으로 바뀌었다. 반나부리의 뜻은 ‘대읍(大邑)’이다. 이 지역은 나주평야의 일부로 영산강 동쪽에 자리잡고 있어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여 큰 취락

  • 반남 / 潘南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반나로 고쳐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으로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반남군으로 고쳐 야로(野老)와 곤미(昆湄)의 두 현을 함께 다스리도록 하였다. 고려 초에 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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