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권유선 / 權有善 [종교·철학/유학]
?(중종)-?(선조). 아버지는 권평, 어머니는 김사검의 딸이다. 저자의 생평 자료는 8세손 권문혁까지는일부 남아 있었으나 미산정사와 고적이 1798년(정조 22) 화재로 모두 소실되어 증빙할 문헌이 거의 없다. 9세손 권석원의 가장과 용전 김철희의 묘갈명을 바탕으
권응수 / 權應銖 [종교·철학/유학]
1546(명종 1)∼1608(선조 41). 조선 중기의 의병장·무신. 아버지는 권덕신이다. 1583년 별시무과에 급제, 수의부위권지를 거쳐 훈련원부봉사로서 의주용만을 지켰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 돌아가 의병을 모집하여 궐기했다. 경상좌도병마절도사우후, 밀양부
권응인 / 權應仁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문인. 퇴계(退溪)이황(李滉)의 제자로 시문에 능하였다. 권응인은 서류 출신인 탓에 서얼금고(서얼 출신은 벼슬에 재한을 두는 것)에 얽혀 벼슬은 겨우 한리학관(漢吏學官)에 머물고 말았다. 당대의 명문장가이다. 권응인은 송대의 시풍이 유행하던 당시의 문단에
권이복 / 權以復 [종교·철학/유학]
1740년(영조 16)∼1819년(순조 19). 조선 후기 학자. 부친 성균관생원 권염과 모친 박이상의 딸 무안박씨 사이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 권이관·권이림이 있다.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서 수학, 세상 명예와 이득에 뜻을 두지 않았다. 평생 학문의 기본을
권이진 / 權以鎭 [종교·철학/유학]
1668(현종 9)∼1734(영조 10). 조선 후기의 문신. 예조좌랑 권득기 증손, 할아버지는 우윤 권시, 아버지는 현감 권유, 어머니는 산림 송시열의 딸이다. 윤증의 문인이다. 1694년(숙종 2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한평현령, 전라도도사, 평안도관찰사 등을
권인하 / 權人夏 [종교·철학/유학]
1805(순조 5) ∼1889(고종 26). 아버지 권택모, 어머니는 의성김씨이다. 어릴 때부터 영민하였으며 <소학>‧<효경> 등의 서적을 공부하였다. 33살 때인 1837년(헌종 3)에 정재 유치명 선생을 찾아가 <대학>‧<서명> 등을 공부하였다. 선배 학자들의 사
권일신 / 權日身 [종교·철학/천주교]
조선 후기의 학자·천주교인(1751∼1791). 1782년(정조 6)에 천주교에 입교했고, 이승훈에게 영세를 받았다. 이후 포교활동에 힘썼다. 신해박해 때 체포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회오문을 바쳐서 배교했다. 예산으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
권자신 / 權自愼 [종교·철학/유학]
?∼1456(세조 2).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한성부윤 권백종, 아버지는 판한성부사 권전, 어머니는 서운관부정 최용의 딸이다. 문종비인 현덕왕후의 아우이다. 좌부승지,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456년 성삼문·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복위를 도모하였으나 김질의
권재대 / 權載大 [종교·철학/유학]
1778년(정조 2)∼1859년(철종 10). 조선 후기 음관. 증조는 설서 권정열, 조부는 권사건, 부친은 권항도, 외조부는 이육, 처부는 진사 박양한이다. 1795년(정조 19) 제릉참봉에 제수되었고, 두 번이나 장헌세자의 추숭을 상소한 죄로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
권전 / 權專 [종교·철학/유학]
1371(공민왕 20)∼1441(세종 23).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증 공조참의 권정중, 아버지는 한성부윤 권백종, 부인은 최용의 딸이다. 공조참의, 호조참의, 공조참판, 판한성부사, 영의정부사 화산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창렬사에 제향되었다.
권정선 / 權靖善 [교육/교육]
1848(헌종 14)∼? 국어학자. 조선 말기 사람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고, 만년에는 국어학연구에 힘써, 1906년『정음종훈(正音宗訓)』과 『음경(音經)』을 저술하였다. 특히, 『음경』은 그 저작목적이 문자사용의 혼란을 막고 누구나 바르게 배울 수 있는 기준을
권정성 / 權定性 [종교·철학/유학]
1677년(숙종 3)∼1751년(영조 27). 조선 후기 문신·유학자. 증조는 집의 권격, 조부는 한수재 권상하이다. 부친 부사 권욱과 모친 현감 김진수의 딸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목사 송병익의 딸이다. 조부 권상하의 슬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관직은 돈령
권종락 / 權宗洛 [종교·철학/유학]
미상∼1819년(순조 19). 조선 후기 학자. 죽림공 권산해 후손, 부친 권익수와 모친 이주윤의 딸 월성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간재 이헌경의 문인으로 경전의 뜻을 익혔으며, 함께 깊이 교유한 인물로는 번암 채제공, 이계 홍양호 등이 있다. 영주 금성단과 영월 창절
권종원 / 權鍾遠 [종교·철학/유학]
1880년(고종 17)~1937년. 조부는 휘 권주상, 부친은 휘 권석환이다. 공은 학문에 있어서는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성현의 글을 읽고 단지 종이 위의 빈 말로만 여긴다면 만 권을 읽어도 아무런 득이 없다.”고 하였다. 것이다. 공은 진성 이씨 퇴계
권주 / 權柱 [종교·철학/유학]
1457(세조 3)∼1505(연산군 11). 조선 중기의 문신. 권심 증손, 할아버지는 권항, 아버지는 권이, 어머니는 송원창의 딸이다. 1481년 친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공조정랑, 사간원헌납, 홍문관부제학, 도승지, 동지중추부사,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
권주환 / 權胄煥 [종교·철학/유학]
1825년(순조 25)∼1893년(고종 30). 조선 후기 학자. 조부는 권진한이고, 부친은 대소재 권현상이다. 정재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대학》·《서명》 등을 익히며 성리학 이론을 터득하였다. 교유한 인물로는 도의로써 편지를 주고받은 김흥락 등이 있다.부친의
권중현 / 權重顯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친일파 관리(1854∼1934). 을사오적 중 한 사람. 1884년(고종 21) 부산감리서 서기관에 이어 주일공사, 한성판윤, 참찬, 법부, 군부대신을 역임했다. 농공상부대신으로서 을사조약 체결에 찬성했다. 1910년에 일본 자작(子爵)이 되었다. 조선총통부
권직 / 權溭 [종교·철학/유학]
1792년(정조 16)~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권일형, 조부는 권흡이다. 부친은 권복, 모친은 여준영의 딸이다. 1827년(순조 27) 3월에 열린 삼일제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고, 같은 해 정시에서 병과 24위로 문과 급제
권진 / 權軫 [종교·철학/유학]
1357(공민왕 6)∼1435(세종 17). 조선 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감찰규정 권희정이다. 1377년(우왕 3) 21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해 촉망을 받았다. 당시 권세가인 염흥방이 자기의 조카딸과 혼사를 맺고자 했으나, 권세가와 혼인하기를 거절해 염흥방의 미움을
권진응 / 權震應 [종교·철학/유학]
1711∼1775. 증조부는 권상하, 한원진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수업하여 오직 학문에만 힘썼고 과거 시험을 보지 않았으나 초선에 뽑혀 자의가 되었다. 후에 권상하의 일로 <유곤록>을 소론한 것 때문에 제주에 귀양을 갔다가 몇 해 뒤에 방면되었으나 병으로 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