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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한이경 / 韓利敬 [역사/근대사]
1883-1927. 독립운동가. 별명은 이경(履敬·理景).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20년 3월 군자금 모금과 친일배 주살을 목적으로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면에서 출범한 대한청년결사대는 1920년 5월 하순 대조선독립 보합단(일명 普合團)으로 명칭을 바꾸고 부서를 정비하
한익상 / 韓益相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7∼1846). 상경 후손, 사주의 증손, 할아버지는 덕기, 아버지는 명간, 어머니는 신위의 딸이다.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전적을 거쳐, 경성부판관·무안현감·장령·정언 등을 지냈다. 1836년 강원도관찰사로 탐관을 적발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한일동 / 韓一東 [역사/근대사]
1891-1934년 4월 3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함안(咸安)이다. 강기수(姜琪秀)·박건병(朴建秉)·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조한휘(趙漢輝)·한관열(韓灌烈)·한종순(韓鍾淳) 등이 고종 황제 국장(國葬)을 다녀오면서 서울에서 시행된 독립선
한일청 / 韓一淸 [역사/근대사]
1899년(광무 3) 11월 15일∼1960년 11월 29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다른 이름은 한세(韓世)‧한용구(韓用求), 본적은 경상북도 예천(醴泉)이다. 1926년 6‧10만세운동에 가담하여 태극기와 격문을 배포하였고, 일본에서 조선운동의 기
한장석 / 韓章錫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2∼1894). 예문관·홍문관의 제학, 예조·형조·이조의 판서, 함경도·경기도의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유신환의 문인 가운데 김윤식·민태호와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저서로는《미산집》이 있다.
한재호 / 韓在鎬 [역사/근대사]
1901-1969. 독립운동가. 일명 기복(基福).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1일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000여명의 만세시위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앞세우고 양성면 동항리로 행진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경계로 하는 고개에 이르러
한정당집 / 閒靜堂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송문흠의 시문집. 8권 4책. 목판본. 1788년(정조 12) 사위 김광묵이 간행하였다. 권말에 조카 시연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164수, 권2∼4에 서 88편, 권5∼7에 잡저 32편, 서 4편, 기 7편, 발 2편, 명 13편, 찬 2편, 송
한종순 / 韓鍾淳 [역사/근대사]
1893-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함안(咸安)이다. 1919년 강기수(姜琪秀)·박건병(朴建秉)·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조한휘(趙漢輝)·한관열(韓灌烈) 등과 함께 고종 황제 국장(國葬)에 참여하였다가 서울에서 시행된 독립선언식을 목격
한주교 / 韓柱敎 [역사/근대사]
1907년(융희 1)∼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정평군 광덕면이다.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며, 흥남공장 노동정세를 조사하고 연구회를 결성하여 좌익운동 이론 연구에 힘썼다. 이후 연구회를 개편하여 좌익노동조합결성준비회
한준겸 / 韓浚謙 [종교·철학/유학]
1557(명종 12)∼1627(인조 5). 조선 중기의 문신. 승원의 증손, 할아버지는 여필, 아버지는 효윤, 어머니는 신건의 딸이다. 인조의 장인이다. 158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고, 예문관검열, 함경도관찰사, 지중추부사, 겸지춘춘관사 등을 역임하였다. 함흥의
한진교 / 韓鎭敎 [역사/근대사]
1887-1973. 독립운동가. 호는 송계(松溪). 평안남도 중화 출신. 1914년 6월 중국 상해(上海)로 이주하여 해송양행(海松洋行)을 설립, 경영하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헌납하였으며, 홍성린(洪成麟)·선우 혁(鮮于赫)과 협의하고 인성소학교(
한진희 / 韓軫熙 [예술·체육/체육]
1895년(고종 32)∼1976년. 유도인‧교육자. 함경남도 함흥 출생이다.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귀국하여 1923년 중앙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유도사범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조선강무관(朝鮮講武館)이라는
한징 / 韓澄 [언어/언어·문자]
1887-1944. 항일기의 한글학자·독립운동가. 호는 효창(曉蒼). 시대일보·조선중앙일보 등의 기자로 민족언론창달에 노력했다. 조선어학회에 가입하여 이윤재(李允宰)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편찬전임위원이 되었고,〈한글맞춤법〉을 제정하고 조선표준어사정위원이 되어 표준어제정
한치응 / 韓致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0∼1824). 종범 증손, 할아버지는 세장, 아버지는 광적, 어머니는 민명인의 딸이다. 1806년 신유사옥 때 관직추탈 당한 채제공의 신원을 연합 상소하다 삭출, 다시 기용 개성부유수 때 난동을 일으킨 무뢰배 10여명이 곤장에 맞아 죽은 일로
한치형 / 韓致亨 [종교·철학/유학]
1434(세종 16)∼1502(연산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영 증손, 할아버지는 영정, 아버지는 절, 어머니는 조서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18세로 군직에 음보된 뒤 감찰, 장령, 장례원판결사, 우승지, 좌승지, 이조참판, 형조판서, 개성부유수, 경기도관
한태석 / 韓泰錫 [역사/근대사]
1876-1949.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청양 출생. 향리에서 서당교육을 받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충격을 받고 홍성의 민종식(閔宗植)의병부대를 찾아가 합류, 항일투쟁에 적극 가담, 활동하였다. 그뒤 독자적으로 충청남도 홍산(鴻山) 지치(支峙)마을에
한태진 / 韓泰震 [종교·철학/유학]
1676년(숙종 2)∼1741년(영조 17). 조선 후기 유생. 증조는 한필적, 조부는 한여익, 부친은 한유기이다. 외조부는 박숭부이다. 부인은 이천기의 딸이다. 1714년(숙종 40) 부친상을 당하여 3년상을 끝낸 후에도 두 동생과 전처럼 한 집에서 살았다. 173
한필교 / 韓弼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807∼1878). 1833년(순조 33) 성균관 진사시에 합격하고 목릉참봉에 기용된 후 호조참의·돈령부도정·오위도총부부총관·공조참판 등을 지냈다. 자신이 근무했던 관아들을 그린《숙천제아도》화집을 편찬했다.
한필수 / 韓必壽 [종교·철학/유학]
1696년(숙종 22)∼1751년(영조 27). 조선 후기 유학자. 한철충 후손, 증조는 한극창이다. 조덕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충효를 중시하는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여,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성품이 온화하였다. 유고로는《인묵재유고》가 있다.
한형길 / 韓亨吉 [종교·철학/유학]
1582(선조 15)∼1644(인조 22). 조선 중기의 문신. 상 증손, 할아버지는 성원, 아버지는 담, 어머니는 민세주의 딸이다. 의에게 입양되었다.1620년(광해군 12) 호조좌랑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의성현령을 거쳐 장령을 지냈으며, 동부승지




